5월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무참히 살해됐다. 이른바 ‘강남 묻지 마 살인사건’이다.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는 20대 여성 4명이 버스 추돌사고로 숨졌다. 10월에는 달리던 관광버스에 불이 나 승객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 한 해 충격적인 범죄와 대형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정부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가 실시한 사회복지 분야 정책평가에서 안전 관련 정책들이 대거 상위권에 올랐다. 논란 속에 시행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의 순위가 가장 높았다. ○ 국민 안전과 직결된 정책 주목
한국이 더 이상 마약청정지대가 아니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유엔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 수가 20명 미만인 나라를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마약사범은 약 1만2000명(10만 명당 23명)으로 한국은 사실상 마약청정국 지위를 박탈당했다. 대검찰청이 ‘마약류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은 이유다. 한국에서 마약사범이 증가하는 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점조직 마약 유통상이 활성화하고 신종 마약 및 의료용 마약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검은 SNS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마약을 차단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특송물류센터를 신설해 화물검사를 강화하고, 공항과 항만에 마약탐지조 운영을 강화했다. 또 전국 14개 지역에 ‘검경 마약수사 합동수사반’을 편성했다. ‘마약사범 증가’라는 위기감이 닥치는 초반에 논리적 일관성을 바탕으로 정책을 꼼꼼히 구성하고 강하게 밀어붙인 점이 긍정적 평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법무부는 강남 묻지 마 살인사건 발생 후인 6월 범죄 취약자를 노리는 강력범죄에 대한 적극 대응에 나섰다. 범죄자 수사와 기소 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폐쇄회로(CC)TV 설치 확대, 남녀 화장실 분리 의무화 등 예방 환경도 보완하는 내용이다. 아직 정책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체감도는 낮지만 관련 부처와의 협력을 강화한다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했다. 경찰청의 교통사고 사망자 줄이기와 국민안전처의 긴급신고처리체계 개선 정책도 대형 교통사고와 경주 지진 발생의 여파로 관심을 모으며 상위권에 올랐다.
윤견수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강력범죄와 대형 교통사고 등이 언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돼 일반인들의 주관적 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며 “다만 높은 관심에 비해 아직 정책의 효과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 부패 근절 위해 청탁금지법 필요
청탁금지법은 일반인과 전문가 평가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2016년 대한민국 정책평가’의 대상이었던 40개 정책 중에서도 4위였다. 부패를 근절한다는 정책의 명확성과 사회 현안 반영도 측면에서 특히 높은 점수가 나왔다. 반면 적용 대상의 적절성 문제, 법 시행으로 인한 관련 산업 분야의 부정적 영향으로 논리연계성 부문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법 시행 초기엔 ‘직무 관련성’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합법의 선이 어디까지인지 애매모호한 탓에 “사회 전체가 거대한 법 안에 갇혀 당분간 일상생활과 인간관계가 얼어붙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그러나 법 시행 석 달이 가까워진 21일 현재 청탁금지법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육군 장성 A 씨는 “청탁금지법 덕에 ‘이번에 군에 간 아들 좀 잘 봐달라고 대대장한테 말해 달라’는 식의 청탁 전화가 아예 안 온다”며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복지와 환경·노동 분야의 경우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관심을 모은 생활밀착형 정책들이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국민의 체감 효과는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환경부의 ‘아파트 층간소음 관리’ 정책은 일반인의 인지도와 형평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만족도는 중간 이하였다. 환경부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등을 신설해 주민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지만 소음과 진동에 취약한 건설기준·공법과 공동체 관리 규약이 부실한 여건 등 근본적인 원인 해결에 미흡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여성가족부의 ‘경력단절여성 취업 지원’ 정책 역시 “목표가 뚜렷하고 사회 현안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효과성과 만족도 점수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