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첫 준비기일에서 신속하고 공정한 심리를 강조했다. 서로 모순인 듯한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읽혔다.
먼저 '신속한 심리'를 위해 이번 탄핵심판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은 본격 심리에 앞서 국회 측이 주장한 탄핵소추 사유 9가지를 5가지 유형으로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헌재가 제안한 5개 유형은 △최순실 씨 등 비선 조직에 의한 인치(人治)주의로 국민주권주의·대의민주주의 위배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7시간 의혹) △뇌물수수 등 각종 법률 위반이다. 국회 및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이에 동의해 심리기간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재 내부에서는 "첫 준비기일에서 헌재가 신속한 심리를 위해 필요한 것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헌재가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에 요청한 수사기록 송부에 대해 박 대통령 측이 낸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도 신속한 심리를 위한 것이다. 가능성은 낮았지만 만약 헌재가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수사기록을 확보할 수 없다면 내년 3월 중 결정을 내리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었다.
헌재는 '공정한 심리'를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대표적인 것이 박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를 국회 측이 변론 전에 공개한 데 대해 박 대통령 측이 "일방적 공개는 안 된다"며 이를 막아달라고 요청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헌재는 또 국회 측이 검찰과 특검에 증거능력을 갖춘 수사기록 복사본인 '인증등본'을 달라고 신청한 것을 받아들였다. 다만 수사자료를 특정하기 위한 사건번호 등을 늦어도 26일까지 헌재에 제출하라고 했다. 이진성 재판관은 "수사기록이 탄핵심판에서 유력한 증거로 사용될 것이므로 정중하고 강력하게 인증등본 형식으로 줄 것"을 검찰에 촉구했다. 헌재가 직접 검찰을 방문해 수사자료를 살펴봐달라는 국회 측의 신청도 받아들였다. 강일원 재판관은 "인증등본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심재판관인 제가 직접 가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준비기일에서 국회 측은 최 씨과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 주요 피고인들의 공소장과 국회 국정조사 조사록,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 '김영한 비망록' 보도를 포함한 신문기사 등 총 49개의 서면증거를 제출했다. 박 대통령 측도 대통령 말씀자료 등 3개의 증거를 냈다. 헌재는 이들 증거를 모두 채택했다.
국회 측은 최 씨와 안 전 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대통령의 파면 사유를 증명할 증인 28명을 신청한 반면 박 대통령 측은 최 씨 등 3명 외에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까지 4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헌재는 공통되는 최 씨와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 등 3명을 우선 증인으로 채택하고 양측과 협의해 증인을 추가할 계획이다.
헌재의 쟁점 정리나 증거 채택 등에서 국회 측이나 박 대통령 측은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방청객들은 "재판관들이 예상 밖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 양측 대리인이 당황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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