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부터 외국인과 혼인하는 한국인이 늘며 ‘다문화’란 말이 등장했다. 각국에서 많은 여성이 한국에 시집오기 시작했고 국제결혼중개업체 역시 많아졌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당시엔 국제결혼이라고 하면 농촌의 늙은 총각들이 결혼하지 못해 외국의 젊은 여성을 데리고 와 함께 산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후 십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문화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각들은 곳곳에 남아있다. 난 은행이나 동사무소처럼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곳에 가기를 늘 두려워했다. 내 신분증이 결혼이민자 신분증에서 영주권 신분증으로 바뀌기 전까지 말이다.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네, 다음 고객 오셔서 신분증 보여 주세요”라는 말에 신분증을 내밀 때, 직원들은 날 안쓰러워하거나 타향에서 고생하는 사람 대하듯 했다. 몇몇 사람은 내 손을 꼭 잡고는 “힘드시겠다. 남편과 나이 차이가 어떻게 돼요?”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기관에 갈 때마다 이마에 ‘우리 남편은 나이가 안 많다. 그리고 난 나름대로 잘살고 있으니 질문하지 마시라’고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는 한국에서 결혼이민자로 살며 겪는 작은 불편에 불과하다. 더 큰 불편은 정부의 일자리 지원과 교육에 있다. 2000년 이후에 들어온 결혼이민자들 대부분은 더 이상 한국 문화나 한국어 교육이 없어도 언어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이민자에 대한 교육은 언어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한국 정부가 신경 써야 할 중요한 과제는 결혼이민자를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와 자녀 지원 문제이다.
결혼이민자는 힘들게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에 떨거나 한국인들과 다른 업무조건에 노출된다. 결혼이민자를 위한 정부의 병원코디네이터나 통역가 양성교육이 많지만 수백 명의 수료자 중 실제로 취업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1년에 대규모로 똑같은 교육이 몇 번씩이나 진행된다. 가끔씩 정부에서 시행 중인 프로그램들이 결혼이민자들의 시간과 희망을 훔쳐가는 안타까운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시를 비롯해 몇 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결혼이민자를 위한 취업박람회를 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얻는 효과는 박람회를 여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적을 것이다. 박람회에 참여하는 기업이나 지자체는 참석했다는 자체에 의의를 두고 보도자료 배포 및 홍보가 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용노동부에는 ‘여성취업성공패키지’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이민여성들이 차별 없이 정부 지원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는 조건으로 실행된다. 안타깝게도 이 역시 결혼이민자들에겐 불리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한국에 오래 있고 오래 살았다고 해도 한국어로 한국인들과 똑같이 직업훈련 받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결혼이민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도대체 해결책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실질적인 연구 및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결혼이민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관심 있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문화가족 구성원에게 질문을 던져 보면 해답은 아니더라도 해답에 가까운 답이 나오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부터 급속도로 증가해 온 결혼이민자 수는 최근 들어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다. 이는 정책 실패와 함께 사회적으로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앞으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 및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우리 다문화가족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응원하지는 않더라도 불편하게 보지 않는 인식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이제 한국에서 평생 살아갈 사람들이다. 더 이상 잠깐 살다 갈 외국인처럼 여기지 말고 한국인과 똑같이 한국에 꼭 필요한 인재 또는 미래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다문화사회다.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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