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28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앞에는 10명의 환경 분야 활동가들이 모여서 구호를 외쳤다. 이중에는 충남 홍성군에서 올라온 석면폐환자 정지열 씨(73)도 있었다. 이날 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중국의 석면 채굴과 사용에 항의하는 내용의 서한을 주한중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이날 행사는 정 씨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가 주최한 자리였다. 석면 광산지역 주민 피해자인 정 씨는 국내에서 석면을 추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3세계 석면 피해를 막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특히 정 씨를 비롯해 국내 환경활동가들은 세계 2위 석면생산국이자, 석면최대 사용국인 중국의 실태를 고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 씨는 "아직 석면의 위험성을 모르는 아시아 국가 시민들이 우리와 같은 슬픔과 비극을 겪지 않도록 문제를 알려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3형제 중 막내였던 정 씨는 10대 때부터 형들을 따라 충남 홍성군 고향의 광산에서 석면을 캤다고 회상했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 폐질환 위험성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알려졌다. 환경부도 2009년 들어서야 신규 사용을 전면금지했다.
당시 정 씨가 석면을 캘 땐 마스크도 없이 맨손으로 사용했다. 하얀 석면가루를 뒤집어 쓴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정 씨와 함께 일하던 첫째 형과 둘째 형은 모두 폐질환을 앓다가 2008년과 올해 각각 숨졌다. 정 씨도 폐질환 판정을 받은 상태다.
정 씨는 "석면피해는 30여 년의 잠복기가 있어 감시를 게을리 할 수 없다"며 "국내서도 석면추방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또 정 씨는 정부가 석면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을 지원을 늘려줄 것을 강하게 요청해오고 있다. 이와 같은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는 최근 석면 피해자가 석면질병으로 사망한 경우에만 유족급여를 지급하던 것에서 석면질환으로 인한 합병증, 후유증으로 숨진 경우에도 유족급여를 지급하도록 '석면피해구제법'을 고치기도 했다.
정 씨는 국내 감시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결성식에 참가한 뒤 거의 매년 아시아 전역에서 열리는 국제 활동에 참가해 석면의 위험성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이달 21일에는 국제환경상 '레이첼이정림' 상을 받았다. 이 상은 아시아 석면추방운동에 앞장서다 2011년 별세한 이정림씨의 이름을 딴 상이다. 임현석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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