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동아일보의 잇단 특종 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1월 15일 치안본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취지로 박 씨가 숨진 과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16일 고문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다. 이어 17일에는 박 씨의 시신을 처음 검안한 의사 오연상 씨(당시 30세)가 “호흡 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으며 물을 많이 먹었다는 말을 조사관들로부터 들었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외상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고 복부 팽만이 심했으며 폐에서 수포음(거품 소리)이 전체적으로 들렸다’는 검안서 내용도 특종 보도했다. 사실상 물고문에 따른 죽음이었음을 행간에 담은 기사였다. 결국 치안본부(현 경찰청)는 19일 ‘경관 두 명이 물고문을 해 숨지게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이 발표 속에 은폐된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22일 ‘치안본부 고위 간부들이 비밀회의를 열어 범인 축소, 사건 은폐 조작을 모의했다’, 23일에는 ‘축소·은폐 조작을 법무부와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특종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이 보도의 여파로 정부는 26일 국무총리,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 내무부 장관(현 행정자치부 장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을 모두 바꾸는 개각을 했다.
동아일보의 집요한 추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씨의 1주기가 다가오던 1988년 1월 12일에는 ‘(1년 전) 치안본부장 등 경찰 수뇌부도 고문 치사 사실을 알았지만 은폐했다’ ‘은폐 조작을 알고도 검찰이 상부 지시에 손이 묶였다’고 또 다른 충격적인 특종을 했다. 이 기사로 1987년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돼 처벌을 받았다.
진실을 캐내 정의를 세운 일련의 보도로 동아일보는 1987년, 1988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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