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치니까 억 하며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세상에 이런 나쁜 사람들이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에 내 아들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의 탄식에 서울 광화문광장의 분위기도 숙연해졌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14일은 30년 전 서울대생 박종철 씨(당시 22세)가 경찰 고문으로 숨진 날이다. 박 씨와 함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였던 연세대생 이한열 씨(당시 21세)의 어머니 배은심 씨(77)는 ‘종철이’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종철 30주기 추모식은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 모란공원에서 시작됐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추모식에는 박 씨의 형 박종부 씨(59)와 일반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어 박 씨가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대공분실)를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옮겨 계속됐다. 이날 인권센터를 찾은 시민 고용규 씨(57)는 “그동안 박종철을 잊고 살았는데 최순실 국정 농단을 보며 그의 뜻을 다시 떠올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30주기 행사에 왔다”고 말했다.
박 씨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다양한 추모 행사가 치러졌다. 이날 오후 4시 부산진구 소민아트홀에서는 유가족과 일반 시민, 고교 동문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맨 앞자리에서 행사를 지켜보던 박 씨의 아버지 박정기 씨(89)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으며 아들을 그리워했다.
이어 부산진구 서면 중앙대로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는 박 씨 관련 다큐멘터리가 상영된 뒤 누나 박은숙 씨가 무대에 올라 동생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네가 저세상으로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상황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촛불을 든 시민의 뜨거운 열망이 꼭 성취되도록 저세상에서나마 도와주기 바란다”며 울먹여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중구 광복로에서는 박 씨의 혜광고 28기 동기들이 ‘고향 친구들이 친구 종철이를 그리워하다’를 주제로 음악회와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한편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속에서 12차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열려 주최 측 추산 14만6700명(서울 13만 명)이 곳곳에서 촛불을 들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오후 5시 반경 시작된 촛불집회는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와 삼청동 총리공관 등으로 행진을 한 뒤 3시간여 만에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같은 날 서울 대학로와 서울광장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도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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