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전주에 있는 전북도교육청에 특별한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전주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생인 이들은 추운 날씨에 1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 교육청을 찾아 김승환 교육감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출타 중이었던 교육감을 대신해 정옥희 대변인이 학생들을 만났다.
차별에 우는 기간제 교사들
“그래, 무슨 일로 왔니?” 대변인의 질문에 17명의 학생은 “정들었던 담임선생님이 곧 계약이 만료돼 학교를 떠나야 해요. 선생님이 졸업식을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학급 담임이 몸이 아파 휴직을 하면서 작년 10월부터 기간제 교사가 아이들을 맡았다. 당초 이 교사는 올해 2월 12일까지가 계약이어서 아이들 졸업식을 함께할 수 있었지만 담임교사가 복직을 앞당겨 갑자기 그만두게 된 것이다.
필자는 전하기도 민망한 뉴스만 다루느라 혼탁해진 영혼이 일순 정화되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에게 듬뿍 정을 쏟은 선생님이 고마웠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물어물어 교육청을 찾아온 아이들이 깜찍하고 기특했다. 그 선생님에 그 제자들이다.
육아휴직이 장려되면서 정규 교원을 대체하는 기간제 교사가 점점 늘어나 전체 교원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아들도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중간에 담임이 바뀌었지만 기간제 교사라고 해서 정규직과 다른 점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실은 기간제 교사가 더 많은 일을 한다. 정규직 교사들이 맡기 꺼리는 담임, 동아리 활동, 등하교 지도 등을 도맡고 젊은 선생님들은 커피 심부름까지 한다.
무엇보다 기간제 교사의 법률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다. 성과상여금 지급과 관련한 소송 1, 2심에서는 기간제 교사도 교육공무원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숨진 기간제 교사는 순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2년 전에는 경기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30대 기간제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로부터 빗자루로 얻어맞는 영상이 퍼져 충격을 주었다. 가슴 아픈 건 그 교사가 학생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피해자 진술조차 거부했다는 점이다. 교사로서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이익을 우려했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도 노조 가입이 가능하긴 하지만 의미가 없다. 계약이 끝나면 조합원 자격도 끝나기 때문이다.
정규직 교사들이 12월 말 복직 신청을 하는 건 오랜 관행이다. 1월에는 출근을 안 해도 한 달 치 월급과 설 명절수당을 챙길 수 있고 2월은 28일밖에 없는 데다 봄방학도 있다. 정규직이 방학을 전후해 복귀하면 기간제 교사는 계약 기간도 채우지 못한 채 밀려난다. 많은 교사가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촛불시위를 보며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한솥밥을 먹는 기간제 교사 문제에는 등을 돌리고 한술 더 떠 갑질까지 한다. 이런 옳지 못한 관행에 순수한 동심이 보기 좋게 ‘한 방’을 먹인 것이다.
정규직 교사 ‘갑질’ 언제까지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교육청은 복직 신청을 한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복직을 잠시 미룰 것을 요청했고 교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가 모두 이처럼 멋진 아이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건 아니다. 기간제 교사 문제를 언제까지 정규직의 양보와 배려에만 기댈 건가.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에게 묵직한 숙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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