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직후인 19일 오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실망한 기색이었다. 특검은 “구속영장이 꼭 발부될 것으로 낙관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영장 기각이 향후 수사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구속영장 기각에 따라 특검은 2월 초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이전에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보강하기 위한 조사를 할 방침이다.
○ “박 대통령 형사처벌 가능성 줄어든 건 아니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특검과 피의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에서 ‘견해차’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 “법원의 영장 기각 결정은 매우 유감이나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흔들림 없이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수사 초기부터 삼성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에게 지원한 돈의 ‘대가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특검팀 파견 검사 가운데 특별수사 경험이 가장 많은 윤석열 수석파견검사와 한동훈 부장검사에게 이 수사를 맡긴 것도 대가 관계를 확인해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려던 목적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박 대통령과 최 씨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해 받았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기 위한 연결 고리로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하려던 특검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제3자 뇌물죄’의 핵심 요건인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했다. 조 부장판사가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 “특검이 뇌물을 받았다는 박 대통령과 최 씨를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점도 특검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특검 안팎에선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감안할 때 특검이 박 대통령을 뇌물죄로 처벌하기 위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특검이 뇌물죄 적용의 법리적 논란이 많은 사실을 알면서도 구속영장 청구 절차를 통해 법원에 판단을 맡겨 부담을 덜려고 했다는 분석도 있다.
법조계에선 만약 박 대통령의 뇌물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형사처벌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뇌물 혐의 외에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고, 최 씨에게 청와대의 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 수사에 앞서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공범(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이며,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구속 기소)의 공범(공무상 비밀누설)이라고 밝혔다.
또 특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뇌물죄에 대한 법리적 논란이 있지만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에게 최 씨 모녀 지원이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요구하며 압박한 자체가 질이 나쁜 범죄”라고 말했다.
○ “다른 대기업 수사 차질 불가피”
특검이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대기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혐의 입증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삼성에 대한 수사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에 다른 대기업 수사도 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그동안 SK와 롯데, 부영 등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거나 최 씨 측에서 돈을 요구받은 기업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공언해왔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브리핑에서 “다른 기업에 대한 수사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따라 특검은 향후 두 재단이나 박 대통령과 최 씨 측에 돈을 건넨 다른 대기업 총수들을 입건하거나 기소하려고 할 경우 지금까지보다 신중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