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김대중도서관 기능 상실… 기념 전시실만 일반에 개방
김영삼도서관은 무기한 공사중단… 43곳 지역 명소된 美와 너무 달라
17일 오후 4시 반, 서울 마포구에 있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지하 1층, 지상 3층의 연면적 5290m² 규모로 국고 약 208억 원이 투입됐지만 관람객은 기자를 제외하면 단 한 명이었다.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이곳을 찾은 관람객도 4명이 전부였다. 이름과 달리 방문할 수 있는 공간도 박 전 대통령 기념 전시실뿐이었다.
지난해 12월 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건립에 깊숙이 관여한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취업준비생 이영훈 씨(26)는 “도서관에 책도 열람실도 없이 5년이 지났다. 결국 최 씨와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지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도서관 관계자는 “올해 안에 도서관과 열람실을 개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존경할 대통령 드문 나라’의 대통령도서관
17, 18일 이틀간 동아일보가 찾아간 서울 시내 대통령도서관 3곳은 ‘존경하는 대통령이 드문 나라’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2000년대 들어 전임 대통령 기념사업 차원에서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국민의 발길이 끊긴 ‘이름만 도서관’이었다. 건립 과정이나 건립 후 재정 비리 등에 연루되는 등 잡음만 일으키는 계륵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2년부터 짓기 시작한 서울 동작구 김영삼기념도서관은 예정된 완공 시기를 3년 7개월 넘겼지만 문도 열지 못하고 있다. 국고 보조금 75억 원이 들어갔지만 지난해 7월 내부 횡령 문제까지 발생해 공사가 무기한 중단됐다. 골격이 완성된 건물 내부에는 공사 자재들만 잔뜩 쌓여 있다. 건립을 추진한 김영삼민주센터 관계자는 “이사회의 방만 운영 문제로 공사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는 결국 시설을 서울시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는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서울시가 공공도서관으로 운영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사를 언제 재개할지 결정되지 않아 올해도 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근에 사는 김모 씨(48·여)는 “올해가 YS 서거 2주기인데도 여전히 흉물처럼 방치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김대중도서관은 2003년 국내에서 처음 설립된 대통령도서관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조직한 아태평화재단이 건물과 장서 1만여 권을 연세대에 기증한 뒤 건물 명칭을 바꾸어 문을 열었다. 하지만 2010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서 대부분을 연세대 중앙도서관으로 옮겼다. 18일 방문한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는 책은 상설 전시 중인 DJ 관련 사료 56종 100여 권이 전부였다. 이곳 직원은 “이름은 도서관이 맞지만 연구시설”이라고 했다. 학술포럼 등이 열리기는 하지만 일반인에게 공개된 공간은 기념 전시실 2개 층뿐이었다.
○ 쉽게 다가가는 도서관 돼야
대통령도서관의 본산은 미국이다. 미국은 전임 대통령마다 도서관을 세워 국립문서보관소(NARA), 주정부, 대학 등이 연구시설로 운영한다. 최근 퇴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44대) 도서관이 2020년쯤 문을 열면 모두 44곳이 된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서관, 존 F 케네디 대통령도서관은 한 해 2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다.
한국의 대통령재단들도 미 대통령도서관 체계를 벤치마킹했지만 설립 취지 자체가 달랐다. 대통령 재임 기간 생산한 기록물과 공문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941년 처음 마련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서관 이후 미 대통령도서관은 대통령 기록물 보존과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도서관은 정치적 고려에서 시작됐다. 1997년 대선에 출마한 DJ는 영남권 표심을 잡기 위해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건 측면이 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표류하는 사이 먼저 개관한 김대중도서관은 아태평화재단 관계자가 측근 비리 의혹에 연루되면서 재단 해체 과정에서 떠오른 처방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도서관을 짓는 데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공공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대통령도서관이 대중 교육이나 기록 접근과 무관하게 지어지다 보니 기념 건축물 이외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국민에게 사료와 열람실을 개방하고 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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