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10곳 중 2곳엔 화장실 변기가 부족하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긴 줄이 생기는 이유다. 그나마 있는 변기 10개 중 4개는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재래식이다. 2017년 서울의 초중고교 화장실 얘기다.
서울시교육청의 ‘화장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초중고교 1320곳 중 226개 학교(17%) 화장실에 변기가 부족하다. 현대식 양변기 설치율도 62.1%밖에 되지 않는다. 남녀로 구분해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변기당 적정 인원수를 초과하는 남학교는 18곳, 남학생 화장실 변기만 부족한 남녀공학 학교는 8곳이지만 변기가 부족한 여학교는 71곳, 여학생 화장실만 변기 수가 부족한 남녀공학 학교는 107곳이나 됐다.
서울의 한 공립초에 다니는 이모 양(8)은 “애들이 화장실 한 칸당 4, 5명씩 길게 줄을 서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모자란다”고 투덜거렸다. 이 양의 엄마(45)는 “우리 애 학교에 양변기가 화장실당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수세식 변기”라며 “아이가 구식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는 것에 익숙지 않아 집에 올 때까지 용변을 참는 경우가 다반사다. 딸을 둔 엄마들은 학기 초부터 화장실 문제를 계속 지적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교육청과 서울시는 2014년부터 3년 동안 630억 원을 들여 화장실 개선 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 100여 개 학교의 화장실에 최신식 화장실이 생겼다고 홍보해왔다. 그러나 정작 변기 자체가 부족한데, 화장실 개선 예산의 상당 금액이 파우더룸이 있고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초호화판 화장실을 늘리는 데 쓰였다. 부족한 변기 수, 40%나 되는 재래식 변기의 현실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예산은 한정돼 있고 정책은 우선순위와 선택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예산은 가장 시급한 곳에 먼저 투입돼야 한다.
시교육청은 “화장실 개선 사업을 하면서 변기 수가 부족하다는 점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태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변기당 학생 수 15명이 넘는 학교부터 개선 사업을 진행시켜 2020년까지 마무리하겠다”고만 밝혔다. 개선 대책을 내놓은 건 다행이지만 파우더룸 대신 모자란 변기부터 확충했다면 아이들의 불편이 더 빨리 사라졌을 것이란 점에서 아쉽긴 마찬가지다.
시교육청은 이미 6년 전 한국교육환경연구원을 통해 학교 화장실의 변기당 적정 인원수를 연구했다. 지금부터라도 이 기준을 토대로 변기 수가 부족한 학교들을 찾아가 현장을 점검하고 공사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시교육청이나 서울시는 음악이 흐르는 화장실이 학교 수준을 높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화장실 앞에서 긴 줄을 서는 후진국형 현실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갖겠나 싶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는 올해도 학교 화장실 개선 사업에 각각 216억 원, 200억 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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