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선천성 장애를 안고 세상에 나왔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지만 팔과 다리가 자유롭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24년을 살았다. 학교에 갈 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 밥을 먹을 때, 화장실에 갈 때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랬던 그가 남을 도울 수 있게 됐다.
장애인 박성욱 씨(24)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2017학년도 공립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상·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는 1급 지체장애인으로는 최초다. 올해 3월부터 국어교사로 나선다. 2017년 현재 장애인 중등교사는 총 324명이지만 박 씨처럼 손발을 모두 쓸 수 없는 교사는 없다. 교육청은 박 씨를 위해 사상 처음으로 임용시험에서 대필자를 두게 했다. 박 씨가 답을 말하면 대필자가 답안을 작성했다.
“항상 새로운 길을 가는데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했죠. 제 이야기를 통해 다른 장애인들도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카페에서 박 씨는 중증장애인으로 태어나 국어과 교사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을 회고했다.
그는 고2 때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고2 여름 친구들이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 있을 무렵 박 씨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국내 여행도 힘든데 해외라니. 하지만 국어를 담당하던 담임선생님은 여행 동선을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곳들로 짜고, 박 씨 어머니도 수학여행에 동행하게 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 건 그의 스승이었다.
그래서 그는 몸이 불편한 대신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자질을 갖춘 교사가 되기로 했다.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국어과 교직 이수뿐 아니라 심리학과를 복수전공하며 상담교사 자격증을 땄다. 학생들과 신체활동을 하며 못 어울리는 대신 개별 상담 등을 통해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9학기 동안 수강과 시험은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이었다. 눈 뜨자마자 학교에 갔다. 딱딱해진 근육을 풀기 위해 마사지를 받을 때나 밥을 먹을 때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책을 들어 달라’ ‘밑줄을 그어 달라’…. 그의 손발이 돼 주는 생활 도우미를 쉼 없이 움직이게 할 정도였다. 3시간에 한 번은 누워서 쉬어야 하지만 지난 1년 동안은 꾹 참고 5, 6시간씩 앉아 공부했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나를 보면 자기들도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대학 시절 교생실습을 하며 장애인 교사로서 교단에 서는 법을 연습했다. 판서 대신 파워포인트(PPT)를 만들어 개념을 설명하고, 질문 던지기, 모둠 토론 등의 교수법을 활용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도 세웠다. “물론 ‘중2병’에 걸린 짓궂은 애들도 각오하고 있습니다.”(웃음) 장애인 교사에 대한 편견을 가진 학부모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도 꾸준히 고민했다. “평생 도움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젠 교사로서 남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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