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의 상생은 주제와 부제의 조화로운 어울림이다. 주제만 강조되거나 주제보다는 부제가 더 눈에 띄는 사진은 상생과 거리가 멀다. 사진에 상생이 구현되면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사진에 상생을 구현할 수 있게 해 준 계기는 전 아사히신문 사진부 기자 이와사키(巖崎) 씨와의 공동 취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에 대비해 아사히신문 사진부에서 3개월간 파견 근무할 때 그를 만났다. 함께 도쿄 근처 해변에 사람들이 노란 우산으로 2002란 숫자를 만드는 행사를 취재하러 갔는데 동일한 대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나는 숫자가 잘 보이는 위쪽에서 찍었고 그는 지상에서 찍었다. 내 사진은 여느 평범한 보도사진처럼 주제인 숫자가 잘 보였지만 그의 사진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이 눈에 띄었다. 보도사진 관점에서 보면 내 사진이 목적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표현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사진이 더 나았다.
사진기자가 된 지 10여 년이 지난 후부터 태극이 의미하는 상생과 조화를 사진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상생을 표현하고자 노력하면 인간적으로나 사진적으로나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이와사키 씨와의 공동 취재는 어떻게 찍어야 사진 속의 구성물들이 어울리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후로 내게 사진에서 도전과 극복은 ‘더 세련된 표현으로 상생을 나타내는 것’이 됐다. 일상에서도 상생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상생의 마음’이 들어간 사진을 찍으려니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여행을 즐기듯 사진 찍는 걸 즐기자고 생각했다. 그 후 사진 찍기는 의미가 있는 장면들을 찾아 조화롭게 구성하는 일이어서 더 재미있어졌다.
어느 겨울날 숙직 후 이른 새벽 사진부에서 청계천을 바라보니 하얗게 눈 내린 광장을 두 시민이 걸어가고 있었다. 찍힌 발자국이 내가 걸어온 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으매 감사하며 즐겁게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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