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효림]은퇴 후, 뭘 할건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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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기자
손효림 문화부 기자
 “기타와 제과제빵 기술을 배울 거예요. 바리스타 자격증, 1종 대형보통 면허, 포클레인 기사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막힘없이 줄줄 나열하는 그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32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친 후 아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정준일 씨(59)는 그랬다. 그는 ‘대략 난감, ‘꼰대’ 아버지와 지구 한바퀴’라는 책을 아들과 같이 최근 펴냈다. 

 기자가 계획이 정말 많다고 감탄하자 그가 답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투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아이들을 다 키워서 내 임무는 다했으니까,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거예요.”

 그는 앞으로 매우 바빠질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 재인 씨(29)도 “진짜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치며 즐거워했다. 혹자는 그가 대기업을 다녔기에 노후에 생활비 걱정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돈은 입에 풀칠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며 “중요한 건 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은퇴 후의 생활을 떠올릴 때 대부분은 돈 걱정을 한다. 당연히 중요한 문제다. 생활비 걱정만 없어도 고민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것이기에. 은퇴 후 재취업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임에 분명하다.

 한데 퇴직 후 몰아닥치는 그 기나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미리 계획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공무원인 한 지인은 정년퇴직을 하면 연금이 나와 다행이지만 어떻게 지낼지는 아득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는 그 많은 은퇴자들이 즐긴다는 등산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지내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혼자 즐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배를 만들거나 악기를 배우고,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한다. 국내 혹은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이도 있다. 70세 가까운 한 남성은 배낭 하나를 메고 네팔, 남미 등을 누비며 트레킹을 했다. 영어는 ‘헬로’, 스페인어는 ‘올라(안녕)’밖에 모르지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50대 후반의 여성도 있었다. “용감하다”는 기자의 칭찬에 돌아온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내가 어느 세월에 영어, 스페인어를 배워서 떠나겠어. 공부 다 하고 나면 다리에 힘 빠져서 못 걸어. 산티아고 길 걸어보니 ‘올라’ 한마디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다 되더라.”

 되새겨 볼수록 무릎을 치게 된다. 이들은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룸을 이용하고 밥을 직접 해 먹으며 그다지 많지 않은 경비로 여행을 했다.

 취미라는 게 은퇴했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관심 가는 분야를 파악해 미리 조금씩 해 봐야 여유가 있을 때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먹고살기 바빠 즐길거리를 만들 겨를이 없었다고 항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은퇴#퇴직#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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