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어차피 안 믿을 거 왜 물어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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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김추자의 ‘거짓말이야’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970년대 초 대부분의 집에는 TV가 없었습니다. 주말이면 동네 사람들은 혜화동 로터리 금성사 대리점으로 몰려가서 (김일의 레슬링과) 후라이보이가 진행하는 쇼쇼쇼를 봤죠. 몸에 쫙 붙는 옷을 입은 김추자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거짓말”이라고 하다가 어깨를 한 번 툭 흔들어주면 침이 꼴깍 넘어갔습니다. (너무 멋있었으니까요. 아줌마들은 “말세다∼!” 하면서 혀를 차셨지만, 저를 포함한 남자들은 그냥 TV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죠.)

 거짓말은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거짓을 말하는 적극적인 속임수, 아는 것을 말하지 않는 소극적인 거짓말, 사실을 말하지만 불명확하게 말해서 얼버무리는 애매한 거짓말입니다. 불리한 사실을 ○ ×로 답하지 않고 여러 부연설명을 해서 알쏭달쏭하게 만들고, 논점을 흐리고,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리는 수법이죠. 정치인들이 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복잡한 사안일수록 사실 여부를 밝히기 어렵고, 얼버무리며 시간을 끌다 보면 상황과 관심은 바뀌곤 합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았고, 그 나름대로 사실을 말했으니까 나중에 확실하게 들키지 않는 한 도덕적으로 큰 문제도 없습니다. 불리한 입장에 처했거나 숨길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좋은 방어 수단이죠. 요즘 이런 거짓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반항적인 청소년을 치료합니다.

 부당한 억압과 강요에 고통을 당한, 억울하고 화가 난 사람들이죠. 또한 대부분의 경우 잘못을 했고 숨길 것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공부는 별로 안 하지만, 자기방어를 위해 얼버무리거나 논점을 흐리는 방법들을 매우 잘 발달시키죠.

 가장 흔하고 가장 강력한 방법은 논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한 대상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현재 부모가 옳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동안 부모가 지은 죄가 크니까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현재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며 ‘논점 흐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현안에 대해서만 말하자고 하면 아이는 더 강력한 무기를 꺼냅니다. ‘과도한 일반화’죠. “당신은 늘 그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해!”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 비수를 꺼냅니다. “나만 그랬어? 당신도 그랬잖아?”(김추자처럼 감정을 고조시키며 반복적으로 말하면 사실도 거짓말처럼 들립니다.)

 똑똑한 애들은 논쟁을 합니다.

 주제는 늘 억압과 강요와, 그 악당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비판입니다. 아이는 어른의 의견을 증명할 과학적 근거를 요구합니다. 여기서 어른이 전통과 경험을 운운하면 백전백패입니다. 간신히 근거를 제시하면, 나쁜 권력이 조작하고 왜곡한 것이라며 부정합니다.(어차피 처음부터 권위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서 시작된 논쟁이니까요.)

 아이는 명확한 의견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죠. 반론에는 늘, 내 의견도 확실하지 않지만 당신의 의견은 더 믿을 수 없다며 ‘상대방의 신뢰도를 감소’시킵니다. 거기에 사회적 약자와 자연 보호를 위한다는 윤리로 무장하고 비난을 하면 어른은 할 말이 없습니다.

 거기에 청소년기 사고의 주된 오류인, 원인과 결과를 오해하는 연관성의 혼란, 1과 10에 동등한 무게를 주고 논리를 전개하는 가중치의 혼란, 이상화하는 인물이나 경향의 의견을 무조건 신봉하는 전문성의 무시 등이 더해집니다. 대화는 그냥 말꼬투리 잡기가 되죠.

 대화의 전제조건은 신뢰고, 양보는 더 강하고 현명한 쪽이 해야 합니다. 감정이 잠잠해져야 논리가 가능해지죠. 그래야 사실과 거짓말의 구별도 가능해집니다. 요즘 거짓말이 너무 많으니까요.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추자#거짓말이야#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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