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성호]미안하다 세림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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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벌써 다음 달이면 4년입니다. 이름은 또렷한데 시간은 하릴없이 흘렀습니다. 고 김세림 양. 2013년 3월 26일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통학버스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만 세 살 때였습니다.

당시 세림 양 어머니의 오열이 눈앞에서 본 것처럼 지금도 선명합니다. “아저씨, 우리 아기 어디 있어요? 우리 아기 보여주세요.” 신문기사 첫 문장에 적힌 세림 엄마의 절규가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세림 양 사고 후 이제 막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둘째 아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세림 양과 같은 세 살이었습니다. 둘째 아이 역시 매일 아침 통학차량을 탔습니다. 25인승에 동승자가 있는 버스입니다. 세림 양 사고 때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한동안 아이가 배꼽인사를 하며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시 어린 자녀를 둔 엄마 아빠의 마음이 다 비슷했을 겁니다.

하지만 새벽 출근과 한밤중 퇴근이 일상인 아빠가 아이의 통학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주말마다 “어린이집 차 탈 때 꼭 안전벨트 매라”고 당부하고 다짐받는 게 전부였습니다. 스마트폰에 한눈을 팔며 듣던 세 살짜리가 제대로 이해했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이라도 해놓아야 불안감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딸을 떠나보낸 세림 양 부모는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통학차량 안전기준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딸의 이름을 허락했습니다. 악몽이 들춰지는 고통을 감수하고 용기를 낸 이유는 분명합니다. 더 이상 안타까운 희생이, 다시는 자신들처럼 아파할 부모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겁니다. 마침내 법이 만들어지자 세림 양 아빠는 “하늘나라의 세림이에게 좋은 선물을 전해주게 됐다. 모든 어른이 세림이법을 잘 지켜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아마 그때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도 같은 소원을 빌었을 겁니다. 또 믿었을 겁니다. 이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태권도장 축구교실에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다고…. 세림이법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5년 1월에야 시행됩니다. 더딘 출발도 마뜩잖은데 유예기간을 2년이나 뒀습니다. 15인승 이하 차량에 법 적용을 미룬 겁니다. 영세 학원의 준비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래,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 기자의 머리로는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광주와 전남 여수, 충북 청주 등 전국 곳곳에서 어린 생명들이 스러졌습니다. 찜통 버스에 8시간 넘게 방치됐다가 중태에 빠진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지난달 23일에는 전남 함평에서 여덟 살 여자아이가 합기도장 차량에 치여 숨졌습니다. 세림이법 전면 시행(1월 29일)을 엿새 앞둔 날이었습니다.

세림이법은 이제야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당장 다음 달 초등학교에 입학해 축구나 농구 교실을 다니는 아이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체육시설 차량은 아예 세림이법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겨우 제 힘으로 걸음마를 시작한 세림이법을 주저앉히려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통학차량에 안전장치를 늘리고 동승자를 태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세림이법을 과도한 규제라고 몰아세웁니다. 부디 우리 어른들이 세림 양의 희생과 세림 양 부모의 용기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생명을 더 이상 돈과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수많은 세림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어린이집 통학버스#세림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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