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주부 수난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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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아내가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박채윤 대표로부터 명품 가방과 현금 2500만 원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고 특검에서 주장했다고 한다. “아이고 선물도 주시고, 아내한테 점수 많이 땄는데 덕분에”라고 박 대표와 했던 통화 내용은 화장품에 대한 감사 인사였을 뿐 아내가 명품 가방과 현금을 받은 건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진 다음에야 아내의 실토로 알게 됐다는 거다. 박 대표 측이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포장해 놓으면 안 전 수석의 부인이 들고 갔다는 게 특검 설명인데 안 전 수석의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

▷문재인 캠프에 영입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배우자에 대한 발언도 논란을 빚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우리 집사람이 비리가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라고 자문한 뒤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겁니다”라고 자답했다. 전 전 사령관의 부인은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다. 비리 의혹으로 학생들의 퇴진 요구까지 받았던 심 총장의 결백을 강하게 주장하는 글이지만, 아무리 군인이라도 어떻게 아내를 사살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가 있느냐며 여성들이 분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3일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에서 “최순실에 대해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고 그녀가 여러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적었다. 20대부터 40년 동안 알고 지낸 최 씨가 무슨 일을 하는 줄 몰랐다는 박 대통령의 말도 믿기 어렵지만 기막힌 건 한국과 독일에서 9개의 법인을 운영했던 최 씨를 가정주부로 묘사한 대목이다. 평범한 가정주부는 최순실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가정주부 전체를 대통령이 모욕한 셈이다.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생각과 삶이 있는 독립된 인격이기도 하다. 공직자 아내도 청렴할 의무가 있으나 아내를 소유물 취급하는 듯한 남편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과거 일부 정치인들이 그랬듯 아내에게 범행을 뒤집어씌운다면 더더욱 용서할 수 없다. 일부 남성은 그렇다 치고 여성 대통령까지 가정주부를 우습게 만드니 이래저래 주부들이 불쌍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안종범 배우자#박채윤#문재인 캠프#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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