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우지희]가슴 속에 품은 사표 한 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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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인사이동 시즌을 맞았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이맘때쯤이면 올해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 팀을 구성하고 있던 인력들이 다시 헤쳐 모이게 된다. 인사이동이란 것이 늘 그렇듯 누구와 한 팀이 될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관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그 바람에 회사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해지기도 한다.

그 어수선한 공기를 조금 더 뒤숭숭하게 만드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이 시즌에 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줄지은 퇴사자들의 행렬 때문이다.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폐허’라는 어느 시 구절처럼, 올해 회사를 떠나게 된 사람들도 죄다 아끼던 선후배들이라 마음이 영 아쉽기만 하다. 어째 괜찮은 동료들만 골라서 회사를 나가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남은 자의 마음은 싱숭생숭하지만, 사실 퇴사는 모든 직장인들의 꿈일지도 모른다. 직장인이라면 모두 왼쪽 가슴에 사표 한 장쯤은 품고 다닌다는 농담도 있고, 출근할 때 간과 쓸개는 집에 두고 와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그만큼 직장 생활이 고단하고 밥벌이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그 월급쟁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홀가분히 나갈 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차례로 떠나는 심경이 어떤지, 어떻게 이 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부러운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저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좁은 취업 관문을 뚫고 들어온 직장이 처음에는 감사하고 뿌듯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곧 결혼을 앞둔 이는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가게 되면서 사직했다. 또 그동안 연이어 힘든 프로젝트에 시달린 이는 재충전을 한 후 목표한 시험에 도전하겠다 하였고, 임신과 출산의 문제로 떠나는 이도 있었다.

사표를 던진 이유야 다양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모두가 한결같이 그렇게 후련하고 개운하지만은 않다고 고백한다는 점이다. 연차가 높은 사람은 높은 대로, 연차가 낮은 사람은 낮은 대로 ‘이제 나가서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마음속의 절반이라고 했다. 백세 인생이라는데 20, 30대에 직장을 관두려 하니 앞으로 인생을 꾸려 나갈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회사에 남은 사람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세상이다. 언제까지 여기에 다닐 수 있을지 매일 아침 출근길에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은 없을지 머리를 굴린다. 허울 좋게 자아실현 하려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아니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될까. 결국 이 시대에는 회사에 남든, 회사를 떠나든 인생 이모작에 대한 궁리를 우리 모두 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윗세대보다는 조금 앞당겨져 일찍 시작되었다는 점이 다소 슬프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면 한편으로는 지금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용감하게, 적극적으로 발을 내디뎠다고 하겠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 버리고 과감하게 빈손으로 새 출발을 하고자 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다고 해서 남은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겁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도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 고이 품은 사표 한 장을 누군가는 던지고, 누군가는 꾹 참은 채 버틴다. 후련하게 사표를 낸 이의 막연함과 설렘이, 그러지 않은 이의 안정됨과 답답함이 뒤섞인 채로 오늘도 대한민국의 직장인 세대는 굴러간다. 각자의 선택이 무엇이 되었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임하고 있을 20, 30대 모든 직장인의 건투를 빈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인사이동#퇴사#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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