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압기 단 한 대가 터졌을 뿐인데 신도시 전체의 전기가 나갔다. 무려 9시간 동안 신도시 내 아파트 약 2만3000채와 상가 도로의 전기가 모두 끊겼다. 일시적 전력수요 급증으로 인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을 제외하고 개별 신도시 전체가 정전된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9일 오전 10시 24분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는 부산정관에너지의 154kV짜리 변압기 1대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신도시 아파트 2만2803채 등에 9시간가량 전기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기장군에 따르면 정관신도시는 한국전력을 대신해 민간업체인 ‘부산정관에너지’가 열병합 발전소를 가동해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소 가동은 한전에서 공급하는 15만4000V 전기를 2만2900V로 바꿔 쓴다. 산업단지를 제외한 모든 시설에 공급하고 남은 전기는 한전에 팔고 있다. 부산정관에너지는 2008년 정관신도시 조성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의 구역전기사업자 공모에 선정됐다. 구역전기사업자란 신규 개발지역에 열병합발전설비를 갖추고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해 허가받은 구역의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사업자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구역전기사업자는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3개 지부 10개사다.
문제는 이날 폭발한 변압기가 부산정관에너지와 한전이 전기를 주고받는 ‘유일한’ 통로라는 것. 예비 변압기를 단 한 대도 갖추지 않았다. 이번 정전 사태가 사실상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익성을 추구하다 시설 투자에 소홀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측은 변압기의 연결 선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기장군 정관읍 A아파트 등 공동주택 4곳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 주부 3명과 유아 2명을 비롯해 9명이 갇혔다가 구조됐다. 또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 주민 수만 명이 추위에 떨었다. 주부 김모 씨(38)는 “초등학교에서 돌아 온 두 아이의 밥을 해주지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상가는 영업 손실과 물건 훼손으로 인한 피해를 봤다. 횟집 상인들은 급히 수족관에 있던 생선을 활어차에 옮겼고 문을 열지 않은 횟집의 수족관에서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고 도로 신호등이 모두 꺼지는 등 사실상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부산시는 사고 발생 26분이 지난 뒤 정전 방송과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사고대책본부는 오전 11시에 설치됐다. 국민안전처에 재난문자발송 요청도 늦어져 오후 1시 12분 전송이 완료돼 뒷북행정이란 논란이 일었다. 부산정관에너지는 오후 5시 50분경 12개 송전 선로 가운데 2개 선로에 우선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서히 공급량을 늘려 7시 28분경 전력 공급이 모두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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