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님의 공언과 달리 수능시험 결과는 충격이었다. ‘1등 반’에서 낙제점이 쏟아졌다. 전원이 대학 진학에 실패한 반도 나왔다. 말이 달라졌다. “학업성취도가 꼭 애들의 실력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이 학교의 시험 방식은 남달랐다. 수업을 들었다면 내용을 이해했을 것이다. 반마다 한 명씩 골라 평가했더니 잘 알고 있더라. 결석자는 없었다. 그러니 모두들 배운 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다. 시험을 본 학생들은 무작위로 골랐을까. 담임선생님은 슬쩍 반장을 추천했다.
참담한 성적을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선생님들은 “열심히 가르쳤지만 애들이 잘 듣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학생들은 “대개는 자습이었다. 그나마 배운 대로 쓴 것도 오답이었다”고 반박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콩가루 학교’는 있을 리 없다. 실제로도 없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우리 정부에서 벌어졌다. ‘학교’를 농림축산식품부로, ‘공부’를 백신으로 바꿔서 읽어 보시라.
5일 충북 보은군의 신고로 시작된 구제역 파동은 열흘 남짓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출발은 좋았다. 6일 확진 판정이 나오자 그날 바로 전국에 이동중지명령이 발령됐다. 초기에 한 달이나 손을 놓았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의 실수를 만회하는 듯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한 달 전 ‘방역 최우수’로 꼽힌 지역에서 발병한 것부터 심상찮았다. “백신 항체 형성률이 97.5%라 확산 가능성이 낮다”던 장담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허언이 됐다. 농가마다 1마리씩, 그나마 농장주가 찍어준 걸로 검사한 엉터리 표본조사임이 드러났다. 항체 형성률이 ‘항체가 형성된 비율’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수용률’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설명까지 나왔다.
농식품부는 “백신엔 문제가 없는데 농민들이 제대로 접종하지 않았다”며 농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농가에 배포한 백신 접종 매뉴얼 자체도 제멋대로였다. 심지어 백신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제대로 파악이 안 돼 부족한 백신을 수입하면 모두 새로 맞혀야 한다.
‘긴급 수입’한다더니 영국 제조업체 본사와 직접 연락한 것도 아니었다. 대사관과 한국지사를 통해 요청한 뒤 며칠이고 회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뒤늦게 재고가 없어 못 준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러시아 중국 등에 SOS를 쳤다.
이렇게 방역 정책 실패상을 꼬집다 보면 혹여 극한 조건에도 일선 방역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그들은 억울하다. 교대 인력도 없어 방역 차량에서 며칠이고 쪽잠으로 버텼다. 눈을 감으면 낮에 죽인 닭과 오리, 소의 비명이 귀를 찢고 코끝에 비릿한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과로로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구제역 취재로 며칠 저녁을 김밥으로 때우고 야근까지 한다며 불만인 기자가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이다. 숨은 영웅인 ‘손발’들에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머리’가 나빠서 정말 고생하셨다고. 손발은 죄가 없다고.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