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결정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주말 집회 현장의 분열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태극기를 든 시민과 촛불을 든 시민 모두 과격한 구호를 앞세우고 있다. 헌법재판소 압박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탄기국)와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은 18일 오후 2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과 청계광장에 모였다. “특검 무효” “계엄령 선포” 등 구호가 반복됐다. 특히 이날 집회에선 ‘사즉생(죽으면 살리라)’ ‘결사항쟁’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 “국민저항권을 행사하겠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더러운 남창 게이트로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평화적 방법을 고수했지만 무시됐다. 법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 방법을 넘어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집회 중 물리적 마찰이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백모 씨(43)는 “탄기국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폭력적인 행위라도 선두에 서서 동참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모 씨(56·여)는 “어떤 움직임에도 적극 동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무단횡단을 제지하던 경찰에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50대 남성이 입건됐다.
‘대구 선글라스 아재’로 소개된 오모 씨는 퇴임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을 겨냥했다. 그는 “박한철이 탄핵 선고일을 3월 13일로 못 박았다. 그 이유가 이정미 퇴임일 때문이라는데 재판관 임기가 대한민국 운명보다 더 중요한가”라며 비난했다. 주최 측은 이날 태극기집회에 약 25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집회도 이날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주최 측은 전국에 약 84만 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탄핵심판 결정까지 나머지 일정이 구체화되면서 찬성 진영에서도 헌재에 영향을 미치려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퇴진행동 측 권영국 변호사는 “탄핵안이 소추돼 헌재에 넘어간 지 두 달이 넘었다. 헌법 유린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탄핵은 인용될 것이다. 주권자의 명령이다”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은 타오르고 병신년은 꺼졌다”고 외쳤다.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이 직접 탄핵심판을 둘러싼 정치권 움직임에 우려까지 표명했지만 이날도 대선 주자와 국회의원들은 경쟁하듯 발언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조기 탄핵이 국민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태극기집회엔 자유한국당의 김진태 의원과 이노근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으로 “탄핵 인용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집회 현장에 돌자 김 의원은 “만약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조사 기한 연장을 승인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 중에 뇌물수수범과 강도범까지 있다. 이런 쓰레기들이 모인 집단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양을 떨던 이들이 탄핵까지 가결시켰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선거 때 삼성에서 30억 원을 받아 감옥도 갔다 온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군중의 위세로 헌재를 압박하자는 식의 집회 참가자들의 태도와 정치권의 개입이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라며 “탄핵심판이 임박할수록 ‘죽기 살기 식’ 분위기로 전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요일인 19일에도 김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강원 춘천시에서는 탄핵 찬반집회가 열렸다. 탄기국 강원본부는 이날 오후 2시 동내면 거두사거리에서 ‘춘천 애국시민 탄핵기각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오후 5시에는 근처에서 퇴진행동 측 촛불집회가 열렸다. 양측은 각각 집회 후 행진에 나섰지만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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