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같은 자리를 차기 정부에선 4차 산업혁명이 차지할 것 같다. 대선 주자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며 자신이 그 준비에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글쎄, 이들이 기술혁신과 이로 인한 사회변혁을 포함하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을 갖는 건 좋다. 문제는 내용이다.
대량 실업 불가피한 시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정책공간 국민성장’ 정책포럼 기조연설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의 보고”라는 독특한 의견을 내놨다. 4차 산업혁명이 세계적으로 500만 개의 일자리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세계경제포럼(WEF) 전망과 동떨어져 있어 어리둥절하다. 미국 유럽에서는 인공지능 시대 대량 실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로봇 사용자에게 로봇세를 부과하는 논의가 한창인데 말이다.
전기차 자율주행자동차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 빅데이터 3D프린터 분야의 4차 산업혁명을 정부가 주도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문재인의 구상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다를 바 없다. 미국은 클라우드, 독일은 설비 단말, 일본은 로봇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고 중국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가진 핵심 역량에 대한 평가도 없이 선진국이 하는 건 모두 하고 그것도 내가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민간부문에서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고 정직한 실패를 보상하는 게 정부 역할인데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공약으로 ‘공시 열풍’을 부채질하는 것도 모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젊은이가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뛰어들겠나.
4차 산업혁명을 교육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한발 앞서 있다. 안철수는 기존의 6-3-3학제를 초등 5년, 중등 5년, 진로탐색학교 또는 직업학교 2년으로 바꾸자는 5-5-2학제를 제안했다. 4차 산업혁명이 자리 잡으려면 자율·협업·축적이 필요하며 이는 교육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논리다. 5-5-2안의 핵심은 초중등교육에서 대입경쟁을 제거하고 마지막 2년에 진로를 결정토록 하자는 것이다. 대학진학률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인위적 학제개편보다는 대학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한국정책학회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채널A가 후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및 과학기술정책 탐색’에 관한 세미나에서 김태일 고려대 교수도 5-5-2안은 실현 가능성보다는 학제개편을 통해 달성하려는 취지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반복적 단순노동은 로봇이 하고 사람은 고차원적이고 창의적인 업무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기술보다는 창의력, 문제해결력,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협업하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교육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
교육은 빈곤 아니면 황당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는 달리 정작 대선 주자들의 교육공약은 역대 대선을 통틀어 가장 빈곤하고 실현 가능성이 떨어져 당혹스럽다. 문재인 이재명의 서울대 폐지를 전제로 한 국공립대 공동입학·학위제나 남경필의 사교육 폐지 국민투표가 그렇다. 주변 학부모들로부터 다음 정부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 같으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말한다. 기대할 게 없으니 지금 하던 대로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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