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 City]<1> 드라마 ‘도깨비’ 속 운현궁 양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7일 03시 00분


조선 ‘비운의 왕자’ 이우(李鍝)의 한 서려
조선왕족 일거수일투족 감시 위해 일제가 지어준 유럽풍 고급저택
日볼모로 평생 전장 떠돌던 이우, 히로시마 원폭투하때 비극적 최후…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 합사 당해

《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앞에 서면 영화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 오드리 헵번을 떠올린다. 그만큼 드라마나 영화 속 인상 깊은 건물이나 풍경은 마음 깊숙이 각인된다. 수도권에도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만 의미가 남다른 곳들이 의외로 있다. 화면이나 책에서 본 내용보다 더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경우도 있다. 대중문화 작품 속 숨겨진 명소를 격주 월요일마다 소개한다. 》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위쪽 사진). ‘도깨비집’으로 나오는 이곳은 서울 종로구의 운현궁 양관(아래쪽 사진)이다. 최근까지 
사무공간으로 쓰이다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면서 실내 출입이 금지됐다. tvN 화면 캡처·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위쪽 사진). ‘도깨비집’으로 나오는 이곳은 서울 종로구의 운현궁 양관(아래쪽 사진)이다. 최근까지 사무공간으로 쓰이다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면서 실내 출입이 금지됐다. tvN 화면 캡처·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보여요, 아저씨 가슴에, 이 검. 나 아직도 도깨비 신부 아니에요?”

은탁(김고은)이 손가락으로 김신(공유)의 가슴을 가리킨다. 900년을 이어온 기다림의 끄트머리,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은탁을 바라봤다.

900년 전 숱한 전장을 누비며 연일 승전보를 전한 장수 김신. 그러나 무분별한 살생을 일삼은 그에게 하늘은 불멸이란 벌을 내린다. 도깨비가 된 그가 무(無)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도깨비 신부’를 만나 가슴에 꽂힌 검을 뽑는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는 죽기 위해 수백 년을 떠돌아야 하는 비운의 한 남자를 그렸다.

도깨비(공유)는 은탁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깨비 집터로 부른다. 언뜻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는 도깨비 집은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운현궁 양관(洋館)이다. 사적 제257호인 운현궁은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의 집이었다. 1864년 운현궁이 조성된 뒤 50년쯤 지난 1912년(추정) 양관이 지어졌다. 초기에는 흥선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李埈鎔)이 살았다. 그가 세상을 뜨자 이준용의 양자인 이우(李鍝)의 거처로 쓰였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차남인 이우는 이준용이 아들 없이 죽자 1917년 그의 양자로 입적했다.

당시에는 찾기 힘들었던 유럽풍으로 지어진 고급 저택의 화려함 뒤에는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다. 양관은 일제강점기 용산 총독관사를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가 설계했다. 조선 왕족을 감시할 목적으로 서구식 고급 저택을 지어줬던 일본은 같은 이유로 이준용에게 공작 작위와 함께 양관을 선사했다. 물려받은 양관에 살면서 이우는 일본군 장교로 태평양전쟁에 몇 차례 참전했다.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며 조선의 왕족을 군에 편입시켰다. 11세에 볼모가 된 이우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망 직전 일본군 중좌(중령)까지 올랐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운현궁이다. 운현궁의 사랑채인 노안당을 따라가면 멀리 양관이 보인다. 양관에 가려면 운현궁을 나와 바로 옆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광복 직후 가난에 허덕이던 이우의 후손이 1948년 양관을 덕성학원에 팔아 현재는 덕성여대가 소유,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 건축양식을 따른 양관은 건축 면적 990m²의 대저택으로 건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5년 6월 양관으로 돌아온 이우는 언론인 김을한 등을 만나 “이제 그만 일본 군복을 벗고 운현궁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뒤 히로시마 주둔 일본군 참모였던 이우는 광복을 앞둔 8월 6일 그곳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맞고 이튿날 죽음을 맞는다. 일본은 그를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강제 합사했다. 이후 유가족들은 이우의 위패를 돌려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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