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 유명인(셀러브리티·celebrity)의 줄임말이다. 과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대표적 셀럽이었다면 이제 스타 강사와 몇몇 지식인이 그 자리를 대체한 느낌이다.
TV를 틀면 채널과 프로그램에 관계없이 설민석 태건에듀 대표, 허지웅 영화평론가, 조승연 작가, 강성태 교육 컨설턴트, 강신주 철학자,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등이 나온다. 이들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횟수와 빈도, 개개인의 스타성과 화제성 등을 고려하면 어지간한 연예인은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대중 친화적인 지식인은 언제나 있었지만 최근처럼 소수 몇몇의 영향력이 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 ‘지식인 셀럽’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쉽게 전달할 뿐 아니라 발군의 화술과 예능감을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부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설민석 대표의 한국사 강연은 연극 무대와 비슷하다. 그는 역사의 중요 장면을 연기하듯 재연한다. 시청자의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강의에 대한 비판도 많다. 무엇보다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과도한 한국 중심주의를 가미한다는 소위 ‘국뽕(국가+히로뽕)’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일본 자민당을 보면 일본 국민이 우경화에 침묵하는 이유가 전쟁을 그리워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식으로 ‘자민당 지지자’를 순식간에 ‘전쟁 찬양주의자’로 만들기도 한다.
다른 지식인 셀럽은 어떨까. ‘뇌섹남’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지난달 12일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패널로 출연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이 됐다면 블랙리스트 사태나 세월호 참사를 안 일어나게 했을 것이냐?”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철학자 강신주는 “유명 여성 철학자는 해나 아렌트 단 한 명뿐이다. 페미니즘 논의는 수준이 떨어진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한때 설 대표 못지않게 방송가를 누비던 최진기 이투스 강사의 사례는 그 결정판이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탐 1타(사회탐구 1등 강사)’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엉뚱한 그림을 조선 말 대가 오원 장승업의 그림으로 소개했다. 그 여파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해야만 했다.
종종 왜곡된 지식을 전달하는 지식인 셀럽의 부작용을 단순히 개개인의 잘못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성찰과 자기반성이 없었던 이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엄정한 지적 권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개인에게 과도한 권능을 부여하고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던 미디어에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에게 정치 비평과 대선 주자 심층 인터뷰를 맡기고, 사회탐구 강사에게 조선 후기 미술사 강의를 시켰으니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TV를 보면서도 머릿속에 무언가를 집어넣어야 하고, 그래야 헬조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배움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 지식인 셀럽의 유행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지식의 빈곤에 시달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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