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자치구 합동 정비 결과
자치구가 내건 행정용 38% 최다… 단속기관이 불법 앞장서는 꼴
市, 과태료 직접 부과 허용 건의
‘30년간 방치된 구룡마을 개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요즘 많이 보는 내용의 현수막이다. 2011년부터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놓고 시작된 서울시와 강남구, 땅주인들의 법적 소송이 최근 마무리되면서 각 동 주민자치위원회 명의로 내건 것이다. 압구정로에 붙은 이 현수막 바로 옆에는 압구정초등학교 이전을 반대하는 ‘압구정초 이전 반대추진위원회’ 현수막이 걸려 있고 강남구 구정(區政)을 홍보하는 현수막도 아래위로 걸려 있다.
광고가 아닌 공적 내용을 담은 이런 현수막은 합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모두 불법이다. 실제로 불법 현수막 중 70% 이상이 공공(公共)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서울시와 자치구가 합동으로 불법 현수막 정비를 벌인 결과, 정비 대상 3090건 중 2171건(70%)이 구청이나 정당 등에서 내건 공공용이었다.
옥외광고물관리법에 따르면 선거홍보나 주요 인물의 관혼상제, 입학설명회 같은 일시적 학교 행사, 종교의식, 안전사고 예방 및 목격자 수배 등 예외규정에 포함된 내용을 제외한 현수막은 지정 게시대 이외의 전봇대, 가로수, 가로등에 걸 수 없다. 정치집회나 노동 관련 집회의 경우에는 집회가 있는 날 신고한 시간 동안만 집회장에 걸 수 있다. 예외규정에 해당하지 않으면 각 시·군·구청에서 현수막을 걷고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서울시 정비 결과 불법 현수막 중 각 자치구가 내건 행정용 현수막이 전체의 38%(1181건)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불법 현수막을 단속해야 할 구청에서 오히려 불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예외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각종 단체와 정당에서 내건 것도 각각 22%(685건), 10%(305건)를 차지했다. 흔히 불법 현수막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부동산 분양광고나 불법 채권추심을 비롯한 상업용 현수막은 전체의 30%에 그쳤다.
일부 자치구는 주민의 여론을 존중해야 한다며 이견이 있는 서울시 정책의 철회를 압박하기 위해 불법 현수막을 묵인하기도 한다. ‘세텍(SETEC) 제2시민청’이나 ‘수서동 임대주택 건립’의 경우 서울시가 추진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하는 해당 구민들이 반대한다는 취지의 현수막 수십 개를 내걸었다. 서울시가 정비를 요청했지만 “주민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이를 따르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 여론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자치구 입장에선 각종 대책회의 같은 주민단체의 현수막을 철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업용 불법 현수막을 단속할 명분도 약화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최근 기초자치단체장이 합동점검 결과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으면 시도지사가 직접 부과할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을 행정자치부에 건의했다. 지역 주민 여론에 상대적으로 압박을 덜 받는 시에서 직접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최대 500만 원인 과태료가 현수막의 광고효과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수막을 포함한 불법 유동광고물 정비 건수는 2014년 52만9647건에서 지난해 85만8033건으로 60% 넘게 늘어났다. 과태료 부과율을 4.2%에서 10.5%로 대폭 올렸지만 효과가 없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과태료에 비해 광고효과가 훨씬 큰 현실이 빚어내는 현상”이라며 “과태료를 지금의 두 배인 1000만 원으로 하는 방안도 함께 건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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