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이모 군(당시 2세)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손으로 자신의 얼굴과 가슴을 때리고 방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 군의 부모는 ‘혹시나’ 하는 걱정에 경찰에 신고했다.
○ 경찰, “아동학대 맞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어린이집 교실 내부를 찍은 폐쇄회로(CC)TV 기록을 통해 이 군이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았다고 판단했다. 영상에는 소파에 있던 이 군이 교사에게 붙잡혀 밀려 넘어지는 모습, 이 군을 구석으로 데려가 테이블로 막고 훈계하는 교사의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같은 반 어린이 모두가 떡을 받았는데 이 군 혼자만 받지 못해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경찰이 의뢰한 전문기관은 이 군 사례를 학대로 봤다. 서울시아동복지센터 산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교사들의 행동을 ‘정서학대’로 판단한 것이다. 교사들의 행동이 이 군의 정서적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본보 의뢰로 CCTV 영상을 살펴본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관계자는 “교사들의 행동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련 특례법 위반 혐의로 당시 어린이집 교사였던 김모 씨(25·여)와 조모 씨(28·여)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26일간 47차례에 걸쳐 이 군을 학대한 것으로 보고 같은 해 6월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 검찰, “사회통념상 한계 넘지 않아”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경찰의 판단이 뒤집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증거 불충분으로 지난달 중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두 교사가 이 군을 넘어뜨리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보육 또는 훈육의 일환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봤다. 정서학대도 사회 통념상 한계를 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아동학대사건관리회의를 열어 사건 내용을 모두 확인했고, 정서학대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얻었다”며 “다른 의도가 있다거나 수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군 부모 등 가족들은 “검찰 처분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아이는 지난달까지 상담센터를 다니는 등 치료를 받았다”며 “가족에 대한 검찰 면담도 겨우 이뤄졌고 수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는 게 가족들 주장의 취지다. 가족들은 변호사 등과 상의해 고검에 항고할 계획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호한 아동학대 판정 기준과 CCTV 설치 기준 강화 등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아동학대 전문 검사와 판사를 양성하는 등 관련 사건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아동학대에 대한 판단 척도도 더 세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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