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숲에 귀가 있고 들에는 눈이 있다’는 작품을 남겼다. 일곱 그루 나무 옆에 귀 두 개가 붙어 있고 들판에는 눈 일곱 개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그림이다. 처음 보면 기괴하다는 느낌을 준다. 인적 없는 숲에도 듣는 귀가 있고 텅 빈 들에도 지켜보는 눈이 있다고 여긴 네덜란드인들의 생각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벽에도 귀가 있다’거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우리 속담과 통한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제이슨 본’에는 마술 같은 해킹 장면이 나온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중앙정보국(CIA)에서 사이버전문가가 독일 베를린의 한 사무실에 놓인 휴대전화에 접속해 바로 옆에서 본이 검색하던 노트북의 기밀자료를 지워버린 것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6000km 넘게 떨어진 거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위치를 알려주는 악성코드가 심어진 휴대용저장장치(USB)를 꽂고 컴퓨터를 켠 것이 ‘나, 여기 있소!’라고 자진 신고한 격이었다.
▷CIA가 스마트폰에 침투해 원격 조종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는 문서를 7일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했다. CIA는 안드로이드건, iOS건 운영체제를 가리지 않고 남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도청하고 영상도 찍는다는 것이다. 스마트TV에 ‘가짜 꺼짐’ 코드를 심어 TV가 꺼진 것처럼 해놓고 도청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 연결된 벽걸이 스마트TV가 ‘빅 브러더(Big Brother)’의 귀가 되는 세상이 왔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를 숙주로 삼은 도청이나 도촬(盜撮) 같은 기술이 나오면 이를 조기 탐지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사이버 공격자를 확인하면 즉각 응징할 수 있는 억지력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안보특보를 지낸 임종인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한국 사이버안보 수준과 의식은 구한말 때나 마찬가지”라고 개탄했다. 사이버 억지력보다는 재래식 전력 증강에만 몰두한다는 것이다. 탄도미사일을 무력화하는 사이버 공격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한국은 거북이걸음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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