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모 별거중 다른 남성 사이서 낳아… 부모가 호적 안 올려 집에서만 생활
작년 슈퍼서 물건값 계산 못하자, 주인이 “아동학대 의심” 경찰에 신고
검사 직권으로 2월 출생신고… 檢 “부모 처벌 원치않아 기소 고민”
세상에 태어났지만 아무도 존재를 몰랐다.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학교에 가본 적도 없다. 마치 ‘유령’ 같은 삶이었다. 은혜(가명·18) 양 이야기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20년 가까이 은혜는 세상에 없는 듯 살았다. 학교는 물론이고 병원조차 간 적이 없다.
○ ‘유령소녀’의 18년
은혜는 1999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부모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은혜를 낳은 어머니 A 씨(45)와 아버지 B 씨(48)는 법적 부부가 아니었다. A 씨가 남편과 별거한 사이 B 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은혜를 출산했다. A 씨는 원래 남편과 이혼하지 못해 은혜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B 씨도 마찬가지였다. 은혜의 친아버지가 A 씨 남편이 아닌 자신인 걸 입증하려면 복잡한 법적 절차가 필요했다. 적지 않은 비용도 들었다. B 씨는 결국 은혜의 출생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출생신고가 안 됐으니 당연히 은혜에게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 한 번도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 유치원은 물론이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아예 학교 문턱에 가본 적이 없다. 은혜는 거의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물렀다. 다행히 A 씨 부부는 은혜를 잘 먹이고 잘 키웠다. 다만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았을 뿐이다. A 씨 부부는 그게 어떤 죄인지 몰랐다. 부모가 읽고 쓰는 걸 가르친 게 전부였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 입시 준비를 할 나이지만 은혜는 간단한 덧셈이나 뺄셈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성을 키울 기회는 아예 없었다. 부모와 말하는 것이 대화의 전부였다.
은혜의 존재가 드러난 건 지난해 6월. 우연히 은혜가 근처 슈퍼마켓에 갔다. 주인은 멀쩡해 보이는 은혜가 거스름돈 계산을 하지 못하는 걸 보고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 최근 경찰은 A 씨와 B 씨를 아동복지법 위반(방임) 혐의로 입건하고 대전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이계한)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 폭력 없는 방임도 분명한 학대
지난달 15일 검사의 직권으로 은혜의 출생신고가 18년 만에 이뤄졌다. 그리고 은혜는 요즘 지역의 한 청소년복지센터에 다니고 있다. 기초 공부를 하면서 조만간 초등 졸업자격 검정고시에도 응할 예정이다. 종이접기와 바느질에도 소질을 보였다. 청소년복지센터 관계자는 “얼마 전에는 양말인형을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선물하고 어머니에게도 주는 등 사회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혜는 지금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는 “아동학대 혐의는 명백하지만 은혜가 부모님을 처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로 말했고 실제 기소 때 아이에게 악영향이 갈 수 있어 기소 여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은혜는 부모를 잘 따르고 특히 아버지를 향한 애착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은혜의 삶에서 18년을 앗아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폭력 등 심각한 학대가 아니라도 이처럼 기본적인 양육의무를 외면한 방임에 대해 부모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형모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A 씨 부부의 행동은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운데 자녀의 생존권을 침해한 것이고 교육적 방임도 했기 때문에 처벌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 사례 중 방임은 2015년 3175건(중복 학대 포함)에 이른다.
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2017-03-14 06:22:35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출생신고 절차가 까다롭고 법적 절차를 진행할 돈이 없어 출생신고를 못했다고 하지 않는가? 요즈음은 이혼도 많고 가족관계가 복잡한 사람들도 있는데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런 경우 출생신고를 좀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거나 구제절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