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국정 농단 사건 당시 독일에 체류 중이던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사진)가 “저 위에서 조용해지면 들어오라고 했다”고 말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영수 전 포레카 대표는 지난해 10월 24일 독일 뮌헨에서 최 씨를 만난 상황을 증언했다. 최 씨의 조카 이병헌 씨의 부탁으로 최 씨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뮌헨 5성급 호텔에서 숙박 중이던 최 씨를 만났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최 씨가 지난해 9월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직후 급하게 한국을 떠나면서 챙겨가지 못한 옷가지와 각종 약품이 담긴 짐을 건네면서 최 씨에게 “한국 여론이 너무 심각하다. 빨리 돌아와서 상황을 수습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요즘 뉴스에 나오는 게 다 사실이냐. 돈을 좀 받았느냐”고 묻자 최 씨는 “다 사실이 아니다. 삼성에서 5억 원을 지원받은 것밖에 없다. 저 위에서 그러는데 한국이 좀 정리되고 조용해지면 들어오라고 했다”고 답했다고 김 전 대표는 증언했다. 검찰은 최 씨가 언급한 ‘저 위’를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국정 농단 사건이 무마될 것으로 예상하고 최 씨에게 귀국 시점을 늦추라고 종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검에 따르면 앞서 같은 달 12일 최 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알게 된 김성우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57)은 박 전 대통령에게 “최 씨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내가 너무 비참해진다”며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의 국정 개입 정황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은 ‘재단의 돈을 최 씨가 빼돌렸으면 문제가 되지만 돈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요지의 ‘법적 검토’ 문건을 작성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최 씨의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조언한 것이다. 보고서에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주체는 공무원이므로 민간인인 최순실은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거나 “현재까지 재단에서 최 씨 측에 자금을 지원한 정황은 없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리고 같은 달 20일 박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만약 누구라도 재단 자금 유용 등 불법을 저질렀다면 엄중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의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한 발언이었다. 또 김 전 대표가 뮌헨에서 최 씨를 만난 24일 박 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치권에선 국정 농단에 쏠린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런데 바로 이날 오후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등 기밀 문건이 담긴 최 씨 소유 태블릿PC가 언론에 보도됐다. 다음 날 오전 우 전 수석은 검찰 고위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에 제출된 최 씨의 태블릿PC 조사 정보를 입수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과 말씀자료가 태블릿PC에 저장된 사실을 파악했다. 이날 오후 박 전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순실 씨는 과거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으로 일부 연설문 등에 도움을 받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6일 최 씨는 박 전 대통령과 통화를 할 때마다 썼던 차명 휴대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안 되자 언니 최순득 씨를 시켜서 박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도록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에게 귀국하라고 전하라”고 말했고, 이를 전해들은 최 씨는 결국 그달 30일 귀국했다. 그 다음 날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최 씨는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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