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서 e메일함을 열어보니 수많은 스팸메일 사이에 한 여고생이 보낸 메일이 하나 눈에 띄었다. 자신을 서울의 한 여고 3학년이라고 소개한 뒤 22일자 ‘횡설수설’로 기자가 쓴 ‘뉴스 문맹’에 관해 언급했다. 청소년들도 가짜 뉴스와 팩트, 뉴스와 오피니언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느꼈단다. 이를 계기로 ‘가짜뉴스 판독을 중심으로 한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주제로 교내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문맹은 단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읽기는 읽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맹이나 마찬가지다. 읽고 이해하고 쓰기까지 해야 문맹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를 문해(文解·Literacy)라고 한다. 뉴스 역시 단순하게 읽는 것만으로는 ‘뉴스 문맹’에서 벗어낫다고 볼 수 없다. 횡설수설을 통해 이런 점을 지적했더니 이 여고생이 관심을 가진 모양이다.
이 여고생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덧붙였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의 형식적, 내용적 차이점’, ‘두 뉴스를 어느 선까지 구분할 수 있는지와 구분 방법’,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뉴스 리터러시 교육 의무화 정책의 타당성 여부’, ‘가짜 뉴스의 생산·확대를 방지하는 제도 유무’ 등이었다. 여고생은 메일 맨 마지막 줄에 ‘부담 없이 편안하게 답변해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썼다. 궁금증을 풀려는 순수성을 조금도 의심하지는 않지만 힘든 숙제를 기자에게 몽땅 떠넘기려는 ‘깜찍한 의도’가 엿보였다. 기자의 착각일까?
사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단박에 알아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전문가도 속아 넘어갈 정도의 가짜 뉴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짜와 진짜를 어느 정도까지 구분할 수 있느냐 역시 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이다. 그 구분선이 뚜렷하다면 가짜 뉴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이유 자체가 없을 것이다. 조기 대선에 맞닥뜨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가짜 뉴스에 대처하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언론사들과 유력 대선 주자 진영에서도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한바탕 치를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발이 빨랐던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뒤쫓아 가더라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처럼 가짜 뉴스의 원점 추적은 이룰 수 없는 꿈일지 모른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다. 모든 사람의 발뒤축은 달걀처럼 생겼다. 그런데 며느리가 밉다보니 달걀처럼 보인다고 지청구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미움과 적개심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좋은 면들이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가짜 뉴스도 문제이지만 한 가지 사실을 놓고 정반대로 해석하는 사태는 더 큰 문제다. 나와 너의 편 가름이 선명한 선거철에는 사실을 각자의 신념에 맞게 해석하는 일이 더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실은 무의미하다. 우주에 별이 5경(京·조의 만 배) 개 넘게 있다고 기자가 주장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람’ 식이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솔직히 우주에 별이 몇 개 있는지 기자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에 인간의 의지와 신념이 개입하면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물이 절반 들어있는 컵도 관점에 따라 ‘반이나 있다’와 ‘반밖에 없다’로 해석이 갈라지고 사람들은 이 해석을 놓고 옥신각신한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는 가짜 뉴스 못지않게 특정 뉴스를 대하는 호감과 편견도 문제가 될 것 같다. 신념 때문에 사실까지 뒤틀리는 큰 풍파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국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추신 : e메일을 보낸 여고생은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연구팀의 양정애 박사에게 문의하면 ‘뉴스 리터러시’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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