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생활쓰레기 위로 A 씨가 초중고교 12년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이 쏟아진다. 그의 꿈처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새내기 생활을 즐기고 있을지, 내년을 기약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지난해 11월 19일 인생에서 제일 긴장하며 한 글자씩 써내려간 김 씨의 흔적이 1190도 화염 속에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30일 경기 안산시의 한 폐기물 처리장 내 소각장. 집게차가 2017학년도 한양대 입시를 치른 학생들의 각종 ‘입시서류’를 소각로와 연결된 창고로 집어넣었다. 지난해 약 3만 명이 응시한 논술고사 문제지와 연습지, 감독관이 고사장에 들고 간 문제지 봉투, 미술 실기 응시자가 바꾼 켄트지, 교수들이 평가하며 끄적거린 메모지, 법학전문대학원·편입학 필기고사 문제지까지. 15t을 넘었다.
한양대 창고에 보관돼 있던 서류들은 이날 오전 실려 왔다. 지원자가 제출한 답안지 원본과 스캔본 외의 것은 모조리 소각한다. 한양대 관계자는 “학생 이름과 수험번호가 쓰여 있어서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각한다”고 말했다.
평소 같았다면 2012학년도 수시모집 때 지원자들이 제출한 자기소개서와 학교생활기록부 같은 ‘입학서류’까지 소각장으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입학서류 보관 규정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해 입학서류는 소각하지 않았다.
본보 확인 결과 대교협은 최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입학서류 보존 기한을 4년에서 10년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최종 결과는 2020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을 확정하는 8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2019학년도까지 대입전형 기본계획에는 ‘전형 관계 서류는 최소 4년 동안 보관해 대입 전형관리의 공정성이 검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된 경우 파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갑자기 보존 기한을 늘리는 건 표면적으로는 국가기록원의 ‘대학기록물 보존기간 책정기준 가이드’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교협 관계자는 “국가기록원이 입학서류의 10년 보존을 권고한다는 사실을 지난해 12월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씨의 연세대 입학 특혜 의혹이 입학서류 보존 기한 연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연세대를 조사했다. 하지만 1998학년도에 입학한 장 씨의 입학서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입학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대 목소리도 있다. 대교협 관계자는 “일반적인 입학서류 양도 만만치 않은데 미술 실기를 보는 대학은 조각상까지 쌓인다. 10년을 보관하려면 전형료가 오를 거라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존 기한을 늘리면 대학이 입시를 더 꼼꼼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한양대 입학처는 지금까지 “우리 애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낮은 애가 합격했다” 같은 문의가 들어오면 보관 중인 입학서류를 꺼내 확인시켜 줬다. 한양대 관계자는 “이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10년 전 지원자까지 검증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입학처장 출신의 한 교수는 “입시 공정성을 위해 보관비용은 대학이 당연히 부담해야 할 문제”라면서 “교육부가 고교 교육정상화 지원사업 예산에서 비용을 쓰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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