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여기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뽑아내 동물의 가축화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론 수많은 실패 요소를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부모의 성공 조건에도 적용된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실패의 확률을 줄여야 한다.
▷한국에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이자 최대 걸림돌이 ‘경제력’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그제 공개한 ‘한국인의 부모됨 인식과 자녀양육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한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5명 중 1명이 경제력을 꼽았다. 자녀와의 소통이나 인내심, 바른 인성, 자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뒤로 밀려났다. 좋은 부모가 되는 가장 큰 걸림돌로 3명 중 1명이 꼽은 것도 본인의 경제력이었다. 지난해 20∼50대 남녀 1013명(미혼자 259명, 무자녀 기혼자 57명 포함)을 조사한 결과다.
▷돈 없으면 좋은 부모도 될 수 없다는 한국인의 의식에 왠지 짠해진다. ‘흙수저 부모’는 ‘흙수저 자식’으로 대물림된다는 포기와 체념이 엿보인다. 아니면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며 우리 사회를 뒤집어 놓은 정유라의 영향일까. 사교육 만능사회에서 부모 경제력에 따라 자식 앞길이 달라지는 현실을 마냥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고 재력 가진 부모가 좋은 부모의 보증수표도 아니다. 모 재벌그룹의 95세 아버지와 두 아들이 같은 날 법정에 출석한 장면이 남긴 씁쓸한 교훈이다.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사랑 인내심 등이 충족되지 못하면 자식농사에 성공하기 어렵다. 언젠가 “부모는 아이를 ‘당장’ 변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변하게 하는 사람”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식의 변화는 돈의 힘으로 살 수 없다. 좋은 부모는 엇비슷하지만 나쁜 부모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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