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있는 곳 어디든… 해결사 ‘홍반장’이 달려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6일 03시 00분


6년 맞은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

서울시에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반장’이 있다. 바로 홍수정 갈등조정담당관(50)이다. 2012년 1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생긴 갈등전담 조직인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이 올해로 만 5년이 됐다. 갈등조정담당관은 홍 담당관의 직책명인 동시에 조직 이름이기도 하다.

○ 악취부터 기피시설 민원까지


홍 담당관은 2014년 발생한 악취 관련 갈등 해결을 지난 5년간 인상 깊었던 일로 꼽았다. 템플스테이,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보문사 근처에 아파트가 들어선 뒤부터 동네에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보문사는 서울시와 아파트 시공사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문제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시간대나 날씨, 개인에 따라 악취의 정도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자칫하면 보문사 신도와 학부모, 주민 1000여 명의 집단민원으로 번질 수도 있을 만큼 갈등은 폭발 직전이었다. 이때 홍 담당관 이하 8명으로 구성된 갈등조정담당관이 재빨리 나섰다. 현장으로 달려가 시와 구, 그리고 민간을 연결해 조치를 취하게 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전문가들은 직접 하수관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성북구 관련 부서와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들은 8차례나 함께 현장조사를 벌였다. 결국 예상과 달리 하수구가 아닌 정화조의 공기공급장치가 원인으로 드러났다. 갈등은 3개월 만에 해소됐다. 갈등조정담당관이 가래로 막을 뻔한 일을 호미로 막은 것이다.

갈등조정담당관의 손이 직간접적으로 닿은 사업은 갈등 진단 체계가 정비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988건. 갈등 진단 체계는 갈등이 생겼거나 예상되는 서울시 공공사업을 4개 등급으로 나눴다. 이 중 서울시 전체(1등급) 또는 여러 부서(2등급)가 협력해야 하는 갈등을 중점관리대상으로 삼는다. 갈등조정담당관의 역할이 빛을 발한 것은 중점관리대상 135건이다.

시민들이 서울시 민원창구 ‘응답소’에 제기하는 고충을 발굴해 예방하는 것도 갈등조정담당관의 역할이다. 서울시 사업이 아니더라도 시민의 불편이 점점 커져 집단민원으로 번질 확률이 높은 문제도 운영의 묘를 발휘해 개입한다. 이웃분쟁조정센터같이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른 갈등조정기구에도 참여하거나 자문에 답해준다.

○ 판관 아닌 조정자


갈등조정담당관이 만들어진 뒤 중점관리대상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갈등의 난도는 높아지고 있다.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자 각 부서에서 해묵은 난제를 들고 갈등조정담당관을 찾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3일 이곳을 찾은 시의회 관계자도 “시는 (주민 기피시설을) 무조건 짓는다고 하고 주민들은 원하는 것도 없이 무조건 반대”라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홍 담당관은 “이런 문제도 조정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정은 문제가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며 팔을 걷어붙인다. 그는 “우리는 판관(判官)이 아니라 조정자”라며 “(해결의) 9분 능선까지 넘은 것 같더라도 무리해서 결론을 지으려 하면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라고 했다.

물론 접수되는 갈등이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안양대 하동현 교수가 지난해 서울 갈등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3∼2015년 중점관리대상 93건 중 18.3%는 쟁점이 해결되지 못한 채 갈등이 지속됐다.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시장 현대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전체 갈등의 31%는 원인을 제공한 사업이 원만하게 마무리되며 해결됐다. 나머지도 관리·예방활동만 이어가는 정도로 정리되는 등 대부분 갈등이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홍 담당관은 “어떤 게 해결인지, 완화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갈등의 골이 깊은 현장에서는 ‘협상 테이블에 대상자들이 골고루 나와서 앉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6년 차로 접어든 올해는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공청회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 형식적으로 이뤄져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홍 담당관은 “공청회를 사전에 충분히 알리고 참가자들의 대표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행정절차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서울시#갈등조정담당광#민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