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만연한 안전불감증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다. 최대 시속 100km로 달리면서도 입석 승객을 잔뜩 태운 수도권 광역버스(서울과 인천 경기를 오가는 직행좌석 및 M버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해 7월 ‘입석 금지’ 정책이 대대적으로 시작됐지만 엄청난 불편을 초래하며 한 달 만에 흐지부지됐다.
그 뒤 3년. 12일 오전 경기 파주시에서 출발해 영등포소방서에서 회차(回車)하는 9×××번 광역버스. 파주시와 고양시를 구불구불 돈 버스는 자유로에 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냈다. 한 손으로 손잡이나 의자 머리 부분을 아무렇게나 잡은 입석 승객들은 무심하게 휴대전화 화면만 쳐다봤다. 운전사는 “항상 불안하긴 하지만 자유로에서 속도를 내지 않으면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고 말했다. 라디오에서는 세월호 인양 뉴스가 흘러나왔지만 버스 안 풍경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출근 시간(오전 7∼9시) 수도권 광역버스 혼잡률은 평균 138%, 최대 185%에 이른다. 45인승 버스 한 대당 평균 17명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서서 간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입석 승객 ‘무대책’의 근간에는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 사이의 정책 갈등이 있다.
서울시는 광역버스 안전 문제의 대안으로 ‘부도심 환승체계 구축’을 꾸준히 내세운다. 시 밖에서 출발한 광역버스가 사대문 인근이나 강남대로 같은 도심까지 진입하지 않고 구파발, 도봉산, 잠실, 사당 같은 외곽지역에서 회차한다. 승객들은 내려서 서울 시내 대중교통으로 갈아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방식이다. 김태명 서울시 버스정책과장은 “부도심 환승 체계는 운행 거리가 짧아지면서 노선에 추가로 버스를 투입할 때 드는 비용은 줄이고 운행 횟수는 늘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노선을 빠르게 순환시켜 승객 밀도를 감소시키면서 서울 시내 교통 체증은 물론 경유 버스 진입으로 인한 대기 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부도심 환승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서울시의 이 같은 구상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도심에 진입하는 버스는 늘고만 있다. 수도권교통본부에 따르면 경기나 인천에서 사대문 인근, 강남대로를 오가는 광역버스 노선 수는 2015년 1월 89개에서 2년 뒤인 2017년 1월 101개로 12개가 증가했다. 운행하는 버스도 1262대에서 1507대로 늘어났다.
이는 경기도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요에 따라 증가한 측면도 있긴 하지만 서울시의 주장에 경기도와 인천시가 콧방귀를 뀌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경기도 관계자는 “서울시가 경기도 버스의 도심 진입을 억제하는 정책에 대해 경기도민의 66%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며 “경기도로부터 경제활동인구를 공급받는 처지의 서울시가 교통 문제를 경기도에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경기도민들이 출근할 때 부도심에서 환승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광역버스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선 도심 진입 억제가 아니라 도심의 버스전용차로를 확대하고, 무조건 외곽 환승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용자 중심의 거점환승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면 중앙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수도권 광역전철의 적자를 중앙정부가 부담하면서 서울시와 경기도 간의 갈등을 해결했듯, 광역버스 문제도 지역 이기주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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