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이권효]씁쓸한 ‘TK 캐스팅보트論’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7일 03시 00분


이권효·대구경북취재본부장
이권효·대구경북취재본부장
얼마 전 열린 간부회의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번 대선에서 TK(대구경북)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권 시장이 다음 달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TK를 캐스팅보트(결정권)로 진단한 배경에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반면 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크게 밀리는 판세를 고려했을 것이다.

권 시장뿐 아니라 정치평론가들도 상당수 이번 대선에서 TK 지역이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진단한다. 보수 성향 유권자를 대변하는 유력 후보가 없고 진보 성향의 정당 후보가 대결하는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는 TK뿐 아니라 영남권 등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장이 ‘TK=캐스팅보트’라고 앞장서 밝힌 건 아쉬움이 남는다. 수십 년 동안 TK 지역이 보수 성향 대통령 후보에게 거의 묻지마식 몰표를 던진 건 이제 추억이다. 그렇다고 벌써 캐스팅보트를 자임하는 식으로 지역의 존재감과 자존심을 떨어뜨리는 것도 유쾌한 모양새가 아니다.

캐스팅보트는 얼핏 결정권을 쥐고 있는 중요한 위치처럼 비칠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이쪽저쪽 저울질하며 기웃거리는 초라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여러 명의 대통령 배출에 주도권을 행사해 왔던 TK로서는 더욱 그렇다.

“남의 밥그릇에 의존해서는 배부르게 먹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캐스팅보트는 TK의 미래가 될 수 없고 돼서도 곤란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폭넓게 얻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광역단체장 경력은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디딤돌이다. 5년 후 권 시장이 TK를 넘어 국가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느냐는 미래형 문제의식도 지금 필요하다.
 
이권효·대구경북취재본부장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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