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부장님, 휴가도 솔선수범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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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2부]<1> 상사부터 휴가 가자

《 국내 관광 활성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도 금요일 조기 퇴근제 등을 통해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민간의 동참 움직임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은커녕 제대로 된 휴식조차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많습니다. 여행을 떠나고자 마음을 먹어도 발목을 잡는 제약이 많기 때문입니다. 휴식과 여행을 가로막는 일상의 제약들을 짚어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안해봅니다. 》
 

4년 차 직장인 김지혜(가명·30) 씨는 제대로 휴가를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상사부터 차례로 휴가 일정을 잡는 사내 문화 탓이다. 상사부터 일정을 잡기 시작해 직급 순서대로 휴가원을 제출하다 보면 김 씨의 차례에선 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가기가 쉽지 않다. 그는 “작년 여름엔 부모님과 제주도 여행을 가려 했지만 휴가를 언제 갈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는 사이에 항공권 값이 치솟아 포기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6년 차 직장인 조지원(가명·37) 씨의 팀원 대부분은 지난해 상사 눈치를 보느라 휴가를 거의 못 썼다. 그런데 연말이 되자 오히려 상사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내 연차 사용실태 조사에서 조 씨 팀의 실적이 가장 저조했기 때문이다. 조 씨는 “상사가 본인의 인사 고과가 나빠진다며 화내는 모습에 오히려 황당했다”며 “휴가 사용은 근로자의 가장 기본권리인데도 편하게 못 써서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김 씨나 조 씨처럼 휴가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들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연차 휴가를 쓰지 못한 이유로 ‘상사 눈치를 보느라’고 답변한 사람은 24.1%에 달했다.

이는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관행과 무관치 않다. 국가 차원의 휴가 권장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예 상사부터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련 제도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상하 관계가 뚜렷한 우리 사회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아예 상사부터 적극적으로 휴가를 쓰도록 해 부하 직원을 보호하는 별도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우선 퇴근부터 상사가 ‘솔선수범’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팀장 이상 직원부터 금요일 오후 5시에 퇴근하도록 독려하는 ‘리더스데이’ 제도를 도입했다. 방송을 틀거나 엘리베이터 등 눈에 잘 띄는 공간 곳곳에 정시 퇴근을 장려하는 안내문을 설치한다. 직원 반응도 좋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상사가 먼저 퇴근해야 직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한 제도”라며 “장기적으로는 직원들의 휴가 소진에도 이런 철학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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