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4·19혁명 57주년
당시 서울대 약학과 70여명, 경무대 철문 앞까지 대열 이끌어
흰색 가운 입은 탓에 의대생 오인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약학대 가산약학역사관을 찾은 박정식 씨(앞쪽)와 김한주 씨. 57년 전 4월 19일을 떠올리며 당시 동아일보에 실렸던 거리 행진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동기 전부가 스크럼을 짜고 경무대(현 청와대) 왼쪽 철문 앞까지 행진했어요. 그리고 잠시 서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총을 쏴서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57년 전 상황을 떠올리던 김한주 씨(79)는 말을 잇지 못했다. 1960년 4월 19일 김 씨는 서울대 약학과 4학년생이었다. 이날 오전 김 씨는 동기, 후배와 함께 위생화학실험 강의실에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학년 대표가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고 외치자 김 씨 등 70여 명이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5, 6명씩 스크럼을 짜고 행진을 시작했다. 모두 흰색 가운 차림이었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 연건캠퍼스 후문을 나와 창경궁을 지나 종로를 걸었다. 시민들은 박수갈채와 환호로 응원했다. 광화문 세종대로 사거리를 거쳐 지금의 경복궁역이 있는 적선동 로터리까지 선두에서 행진을 이어갔다. 이곳에서 잠시 경찰들과 대치하던 학생들은 바리케이드를 뚫고 경무대로 향했다.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약학대 건물에서 만난 김 씨와 동기 박정식 씨(79)는 당시 상황을 마치 사진처럼 생생히 기억했다. 박 씨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지름이 1m, 길이가 6m 정도 되는 큰 수도관을 밀어붙여 바리케이드를 뚫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무작정 뛰어다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맹장이 터져 있었다”며 배에 난 20cm가량의 흉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행진에 나선 서울대 약학과생의 모습은 여러 장의 사진에 담겨 동아일보 등 각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흰색 가운을 입은 탓에 의대생으로 잘못 알려졌고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는 동문도 있다. 김 씨는 “의대생이 아니라 약대생이라는 걸 밝히고 싶었지만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면서 시간이 흘렀다”며 “뒤늦게나마 당시 사진 속 주인공들이 약학대 동문임을 밝히게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22세 피 끓던 청년들은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 두 사람은 “최근 우리 사회의 세대 간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대선 이후에는 대한민국이 화합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댓글 4
추천 많은 댓글
2017-04-19 05:30:49
예나 이제나 한국의 언론은 사시다 무엇하나 제대로 보도 못하는 지진아다 샷다만 누르고 눈감고 낙서하는 집단이다 제일먼저 관가의 주구 노릇하던 경향신문 서울신문이 불탓다 나는 당시 시청앞에서 활활타는 신문사 불꽃보고 시원한 사이다 맛 보앗다 이제 또 누가 탈 차례 왓지
2017-04-19 10:50:32
419 유족들이 김대중 정권 518 마구잡이 유공자 지정에 항의하던 모습이 기억나네...
2017-04-19 10:33:25
지금도 여론조사를 믿습니까? 길거리색딱지조각을 붙이는 것보다 못한 왜곡이 자행되고 있는것이 여론조사입니다 여론조사가 헌데 왜 지난재선거에서는 한국당이 압승을 하였을가요 문재인이 될가 무서워 안철수를 찍는다는 왜곡도 여론조사의 G랄때문입니다 여론조사는 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