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해녀문화. 등재 직후 몇 편의 해녀 관련 영상을 보았다. 바닷속 풍경은 한없이 아름다웠으나 해녀들의 물질은 시종 생사를 넘나드는 처절함의 연속이었다. 영상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해녀들의 숨비 소리였다. 물질을 마치고 물 위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 그건 안도의 소리, 생명의 소리이자 재충전과 또 다른 도전의 숨소리였다.
제주공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성산 일출봉 가는 길. 제주시 구좌읍 김녕 만장굴을 지나면 하도리, 상도리가 나온다. 옥색 바다가 하도 예뻐서 사람들이 차를 멈추고 열심히 기념사진 찍는 곳이다. 최근엔 카페도 많이 생겼다. 이 길로 조금 더 가면 우도행 배가 떠나는 선착장도 나온다.
상도리엔 해녀박물관이 있다. 해녀들의 일상, 지난한 물질 과정, 다양한 물질 도구, 해녀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교의식, 해녀 문화의 공동체적 가치 등을 조명하는 공간이다. 박물관 바로 옆으로 나지막한 작은 동산이 있고 거기 커다란 기념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투쟁을 기리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1932년 1월, 제주 해녀들이 빗창(전복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쇠갈고리)을 들고 이곳에 모였다. 일제의 수탈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이후 연인원 1만7000여 명의 해녀가 항일투쟁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최초의 집단적인 여성 항일운동이었고, 1930년대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투쟁이었다. 해녀들은 그렇게 자식을 키웠고 가정과 공동체를 지켜냈다.
기념탑엔 빗창을 들고 태극기를 흔들며 앞으로 나가는 해녀들의 모습, 등불을 밝히고 야학을 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당시 제주 해녀들은 이 일대에서 야학을 하면서 지식을 익히고 시대와 역사를 응시했다. 우도에도 해녀들의 항일투쟁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유네스코는 제주 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 역사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이바지했고, 늘 약자를 배려하고 공공선을 위해 헌신했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주의적 삶을 지켜냈고, 힘겨운 물질임에도 여전히 그 문화가 전승되고 있다는 점. 1932년 항일투쟁은 제주 해녀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주 해녀들의 항일투쟁 흔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에 상도리 일대의 바닷가는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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