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43명 구조한 어업지도관 5명… “선실 밖으로 왜 못 나왔나?” 의문
“해상 안전교육 강화해야” 한목소리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25분 전남 진도군 의신면 밀매도 해상. 전남도 소속 어업지도선 201호와 207호는 불법 조업을 하는 국내 연안 어선을 단속하고 있었다. 어업지도선에서 내려진 고속 보트 두 척은 불법 그물로 어린 고기를 잡던 7t 어선 한 척을 붙잡았다.
고속 보트에 승선한 어업지도관 5명이 단속을 마치고 철수하려는 순간 201호로부터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 승객들을 구조하라’는 긴박한 무선 연락이 왔다.
이들은 해상 구난구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지만 주저하지 않고 시속 74km 속도로 40여 km 떨어진 사고 해역으로 향했다. 이들은 사고 해역에 도착하기 직전 침몰 상황을 파악한 뒤 오전 10시 7분부터 세월호 선미 쪽으로 다가가 승객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구조 현장은 위험천만했다. 선체가 기울어 각종 물건이 떨어지고 물살이 고속 보트를 빨아들일 듯 거셌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면서 14분 동안 승객 43명을 구했다. 어업지도관들은 20∼30년 넘게 원양어선과 대형 상선 등을 탄 경력이 있지만 세월호 침몰 같은 대형 참사는 처음 겪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모두 구조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왜 학생들이 선실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하면서 한결같이 해상 안전 교육 강화를 주문했다. 현재 환경정화선인 전남914호에 근무하고 있는 임종택 씨(50)는 “모두 구조하고 싶었는데 학생들이 많이 희생됐다. 지금도 세월호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눈물이 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선박이 일정 각도 이상으로 기울면 회복 불능이라고 판단하고 선실 밖에서 대기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침몰 위험성이 큰 카페리가 일정 각도를 넘어섰는데 퇴선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남도 해양수산과학원 소속 해양7호에 근무 중인 오흥식 씨(53)도 “선체가 기울면 선실 밖으로 나와 살펴보는 것이 뱃사람들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목포시 소속인 전남 219호에서 근무하는 이래은 씨(50)는 3년 전 세월호 구조에 참여했고 현재는 미수습자 수습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씨는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한 학생들이 ‘배 안에 있는 친구들을 살려 주세요’라며 울부짖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업지도선 207호 어업지도관 박승기 씨(47)는 “해상 구난구조는 각자 역할을 일사불란하게 수행할 수 있는 훈련이 중요한 것 같다”며 “승객들의 해상 안전 교육 강화도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교훈”이라고 밝혔다.
전국 해안선의 46%(6475km), 바다 면적의 37%(2만6450km²)를 차지하는 전남은 병원선 어업지도선 정화선 등 각종 행정선 46척을 보유하고 선박직 공무원 181명이 근무한다. 이들은 한 해 평균 150일 정도 거친 바다에서 각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세월호 참사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상 구조 구난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한 선박직 공무원은 “국내 어선 불법 어업 지도 단속이 주 업무여서 심폐소생술 훈련이나 선원 안전 교육 정도만 받고 있다”며 “선박 재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구조가 급선무이기 때문에 해상 구난구조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고 훈련 과정을 참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