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아이를 비교하지 마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6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올해 5학년인 민수는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얼마 전에 한자 7급 시험을 보았다. 점수도 괜찮게 나올 것 같아 자격증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한자에 관심이 없던 아이가 이제라도 공부를 시작한 것이 내심 기뻤다. 게다가 자격증까지 따다니….

엄마는 아이가 학교 간 사이 겨우내 못 봤던 아랫집 엄마를 만났다. 민수 자랑을 슬며시 할 셈이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먼저 “저희 애 이번에 한자시험 봤어요”라고 말을 꺼냈다. 이제 2학년인데 이번에 5급을 보았다고 했다. 7급은 일곱 살 때 보았단다. 엄마는 순간 불안해졌다. 민수가 학교에서 오자마자 엄마는 아랫집 이야기를 하며 각종 공부 잔소리를 쏟아냈다.

부모들은 너무나 많은 비교를 통해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가진 부분을 하나하나 떼어서 그 분야 최고의 수준과 비교한다. 그리고 아이가 그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을 불안해한다. 불안해서 아이를 달달 볶는다. 한자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급수를 딴 아이와 공부는 반에서 1등을 하는 아이와, 운동은 미래의 꿈이 박지성인 아이와 비교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끊임없이 열등감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해도 열심히 해도 언제나 나보다 잘하는 어떤 다른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나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산다. 이러한 비교는 삶의 좋은 기준이 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독려하는 좋은 활력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비교는 인생의 모든 면이 고달파진다. 잘못된 비교에 집착하면 누구든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더구나 비교를 당하는 사람이 아이라면, 결과는 치명적이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갖게 하며, 모든 일에 무기력감을 안겨준다. 또한 부모가 하는 비교는 부모에 대한 불신감까지 만든다. 부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마치 하나의 포도송이 같아서 그중에는 작은 포도알도 있고 큰 포도알도 있고 덜 익은 포도알도 있고 알맞게 익은 포도알도 있다. 이 때문에 아이를 보려면 그 모든 포도알이 달린 포도송이 하나를 보듯 아이가 가진 모든 면을 통합해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그러질 못한다. 포도알 하나는 사과와 색을 비교하고, 다른 하나는 오렌지와 크기를 비교한다. 또 다른 하나는 바나나와 맛을 비교하여 아이를 채근한다. 그것을 모두 합쳐서 아이를 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자신에 대한 어떤 정체성도 가지지 못한다.

아이가 공부는 못하지만 심성이 착하다면 “의사, 박사는 못 되겠지만, 뭘 하든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받겠구나”라고 평가해줘야 한다. 아이가 줄넘기를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잘 못하면 “네가 줄넘기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되지”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아이가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잘못된 기준을 들이밀고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자신의 열등감과 불안감 때문이다. ‘이러다 내 아이가 뒤처지면 어쩌지’ 하는 자신의 슈퍼 불안과 더불어 욕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자꾸 슈퍼키드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너무 못한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이 아이는 공부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된다면, 그 아이 인생의 다른 몫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마라. 그것을 못 견디고 이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부족한 면이 있다면 부모가 인지하고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부족한 면을 부모는 채워줄 수 없다. 그것은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아이 몫이다.

부모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를 불안하지 않게 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은가, 자신의 기준과 가치관을 가진 아이를 키우고 싶은가. 아이를 내 불안을 해결하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부모는 아이의 어떤 면이 내 마음에 조금 안 들 수도, 아이가 원하는 것이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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