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주류업체 하이트진로가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사진 한 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궜다. 정수기에 거꾸로 꽂힌 거대한 플라스틱 소주병 옆에 ‘30L 대용량 참이슬 출시’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에는 진위를 묻는 질문부터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8717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832명이 공유했다.
이 사진은 만우절(4월 1일)을 맞아 주류업체가 마케팅 차원에서 만든 이미지였다. 실제 30L 소주는 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대한 플라스틱 소주병은 실제 제작됐고 23일 방영된 SBS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연예계 ‘주당’으로 알려진 가수 김건모 씨가 이 플라스틱 소주병을 집 정수기에 설치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제작진은 이 장면에 자막으로 ‘정술기’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한국 사회는 유독 술에 관대하다. 이는 미디어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TV 라디오 신문은 물론이고 대형 전광판, 편의점, 인터넷, 심지어 소주잔 바닥까지 술 광고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TV 드라마 속 주인공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술을 마신다. 아예 대놓고 술을 마시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담배의 경우 편의점 외에는 광고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 속 흡연 장면까지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 술 마시는 방송까지 등장
이는 현행법상 담배와 달리 술 광고는 매우 폭넓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가 17도 이상인 술 광고는 TV, 라디오, 지하철만 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과일향 탄산주, 순한 소주 등 최근 유행하는 알코올 도수 17도 미만 술 광고 규제는 더 느슨하다. TV 광고는 오전 7시∼오후 10시, 라디오 광고는 오후 5시∼다음 날 오전 8시(미성년자 대상 프로그램 전후 광고는 모두 금지)만 피하면 된다. 청소년이 자주 이용하는 SNS, 유튜브 광고는 아무 때나 가능하다.
술 광고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송선미 박사는 “한국만큼 술 광고가 자유로운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최근 청소년이 자주 찾는 SNS에서 이벤트를 빙자한 술 광고가 급증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주류 회사 SNS 계정에는 이벤트 광고 게시물이 거의 매일 올라온다. 현행법상 경품 이벤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를 대중매체를 통해 광고하는 것은 법 위반이다. 불법 이벤트 광고 적발 건수는 2014년 96건에서 지난해 249건으로 늘었다.
○ 성인보다 높은 과음 청소년 비율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 청소년의 15%가 최근 1개월간 술을 마신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50.4%)은 1회 평균 음주량인 소주 5잔 이상(남자 기준·여자는 소주 3잔 이상)을 마시는 위험 음주자였다. 청소년과 기준은 조금 다르지만 성인의 고위험음주율(13.3%·2015년 기준)보다 훨씬 높다. 청소년 음주율은 매년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반대로 위험 음주율은 오르고 있다. 한 번 마시면 과음하는 청소년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알코올질환전문병원협의회 홍보이사 양재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진병원)는 “과거 남성 알코올의존증은 30대 중후반부터 나타났지만 청소년 음주가 늘면서 20대 환자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최근 방송을 보면 음주에 관해 최소한의 선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 담배처럼 술 광고나 방송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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