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 구조현장에서 돌발 상황으로 인적 물적 피해가 생기면 대부분 소방관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다는 4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충격적이다. 2014년 인천에서 구급차로 이송하던 술 취한 여성이 차 밖으로 뛰어내리면서 뒤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당시 구급대원은 소송비용을 모두 본인이 부담했다. 다행히 최종 판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구급대원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아직도 구조 활동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안전처 산하 중앙소방본부가 파악한 민사 행정소송은 최근 8년간 34건이다. 이는 중앙소방본부 대상일 뿐 전국적 상황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인력 부족, 장비 부실 등 소방관의 열악한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장 출동 시 기물 파손, 인명 사고 등으로 피해자와 합의가 필요하거나 법적 다툼이 생기면 사비로 해결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소방서 예산을 지원받으려면 자체 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합의를 못 하면 경찰 조사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데다, 기관 평가 시 감점 사유가 될 수 있어 윗선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탓이다.
언제든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음에도 소방관을 위한 법률적 지원 조직도 없다. 경기도가 지난해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악성민원 전담대응팀’(48%)과 ‘소송전담 법무조직 시스템’(34.9%)을 소방조직에 가장 필요한 법률적 지원으로 꼽았다.
어제는 국제소방관의 날이었다. 화재 진압 후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소방관 사진이 공개돼 국민들 가슴을 먹먹하게 한 적이 있다. 그렇잖아도 격무에 시달리는 소방관에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비롯된 법적 문제를 떠맡기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국가에서 무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법률지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소방관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 바로 국가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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