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삼육대 근처 꽃집.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몸을 휠체어에 반쯤 누인 청년은 좁다란 문 앞에서 어눌하게 말했다.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왼손 검지는 분홍색 카네이션을 정확히 가리켰다. 청년 옆에 서있던 장애인 활동도우미가 “카네이션 한 다발 달라”고 말했다. 주인은 가장 싱싱한 카네이션을 골라 청년에게 안겼다. 꽃다발을 품에 든 청년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어버이날인 이날 저녁 엄마에게 줄 선물이었다.
청년은 올해 삼육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신민우(가명·19) 씨다. 척수성 근위축증이란 진행성 마비 질환을 앓는 신입생은 삼육대 개교 111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여러 장애인 학생을 받았던 학교 측은 신 씨의 입학이 확정되자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 김현란(가명·48)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 씨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묻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엄마는 “우리 힘으로 못할 게 없다”며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모자는 캠퍼스 커플처럼 캠퍼스를 누빈다. 전동 휠체어를 타기는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팔로는 조정 레버를 작동할 수 없다. 엄마가 키 180cm 아들을 태우면 100kg에 육박하는 휠체어의 ‘운전사’인 셈이다. 김 씨는 “철인3종 경기에 나가면 우승할 것”이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수업은 신 씨 몫이다. 교양과목 2개, 전공과목 4개, 모두 17학점을 듣는다. 체력적으로 힘든 장애학생들은 보통 최소 학점을 듣는데 신 씨는 이보다 5학점을 더 듣는다. “여학생이 더 많은 교양수업이 기다려진다. 학식(학생식당 밥)은 엄마가 해준 밥보다 더 맛있다”며 농담 섞인 진담을 건네는 모습은 여느 대학 신입생과 다름없다.
엄마는 아들을 강의실에 들여보내면 아예 건물 밖에서 기다린다. 김 씨는 “늙은 아줌마가 강의실에 있으면 학생들이 불편해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들이 행여 ‘민폐’ 장애인으로 낙인찍힐까 걱정돼서다. 그러나 학생들은 신 씨의 손이 돼주었다. 대필 순번을 정해 필기를 해주고 강의 내용을 녹음해 줬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필기 노트를 보고 녹음된 강의를 수십 번 반복해 들었다. 엄마를 위해 장학금을 받고 싶은 그였다. 아들은 과제도 빼먹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재활을 견뎌 간신히 움직이는 검지는 특수 제작된 컴퓨터 키보드 위에서 마음껏 움직였다.
모자는 10여 년 전 “장애아를 낳아 내 인생을 망쳤다”며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자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싸구려 모텔과 사촌동생 집을 전전하면서도 엄마는 아들의 치료와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엔 쉬지 않고 봉사했다. 아들이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서다. 학교 근처 조그만 연립주택에서 살며 월 200시간 활동도우미의 도움도 받는다. 신 씨가 20년 가까이 다니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는 그의 치료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호흡치료를 통해 숨을 쉴 때 움직이는 근육이 마비되는 것을 억제한다.
신 씨는 얼마 전 중간고사를 무사히 치렀다. 엄마는 “더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은 다르다. 김 씨는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다. 마음껏 움직일 수 없는 아들은 카네이션을 직접 달아주진 못했다. 그 대신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래도록 행복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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