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사를 꿈꾸는 새터민 장광선 씨가 지난해 11월 인천 남구 경원초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광선 씨 제공
“선생님 북한에도 치킨이 있어요?”
“북한에서는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가 있어요?”
경인교대 4학년 장광선 씨(32)는 교생실습을 갈 때마다 초등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마주한다. 담임선생님이 “이번 교생선생님은 북한에서 오셨어요”라고 알려주면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가장 최근 실습을 나간 인천 남구 경원초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 씨가 스마트폰으로 구글 지도를 열어 함북 회령시 모습을 보여주며 “북한에도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가 있고 기차역도 있단다”라고 하자 학생들은 신기한 듯 생글거렸다.
장 씨는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북한에서도 선생님을 꿈꿨다. 첫 번째 탈북한 2008년에 그는 남포사범대에서 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이 문제였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으로 갔다가 붙잡혀 1년 반 동안 수용소에 감금됐다. 매일 ‘사상 조사’를 받았다. 맞다가 정신을 잃기도 했다. 2012년 4월 두 번째로 국경을 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웠다. 교사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직 후 새터민을 돕던 강정규 씨(67·여)와의 만남이 꺼져가던 희망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강 씨는 장 씨에게 “여기서도 교사가 될 수 있다”며 교대 입학을 권유했다. 돈이 부족한 장 씨에게 매달 용돈을 줬고 겨울엔 오리털 점퍼를 사주기도 했다. 장 씨는 2014년 경인교대에 입학했다.
장 씨는 스승의 날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12일 “한국 사람에게 초등학교 교사는 평범한 꿈일지 몰라도 나 같은 탈북민에게는 ‘거대한 꿈’”이라고 말했다. 새터민이 3만 명에 이르지만 북한을 탈출한 사람 중에 초등 교사는 지금까지 단 1명이었다. 올해 2명이 임용시험에 합격해 3명으로 늘었지만 문턱은 여전히 높다. 새터민 전형을 갖춘 곳도 경인교대 한 곳뿐이다.
어렵사리 입학한 뒤에도 가시밭길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온 사람이 남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 가장 두려웠다. 장 씨는 북한 말투를 고치려고 신경을 쓰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했다. 첫 지도안(案) 발표가 임박했을 때는 위궤양까지 앓았다.
장 씨는 이제 두려움을 극복하고 교사의 길에 ‘한 걸음’만 남겨뒀다. 장 씨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 교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들 하는데 북한이 싫어서 온 사람을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양쪽의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다 접해봐서 오히려 더 객관적이고 풍부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교생실습 때마다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 주는 학생들이다. 그는 “남북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교사가 돼 내년 스승의 날에는 꼭 아이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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