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서 포기한 교사의 꿈 어렵지만 꼭 이룰 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5일 03시 00분


15일 ‘스승의 날’ 맞은 경인교대 새터민 장광선 씨의 다짐

초등 교사를 꿈꾸는 새터민 장광선 씨가 지난해 11월 인천 남구 경원초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광선 씨 제공
초등 교사를 꿈꾸는 새터민 장광선 씨가 지난해 11월 인천 남구 경원초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광선 씨 제공
“선생님 북한에도 치킨이 있어요?”

“북한에서는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가 있어요?”

경인교대 4학년 장광선 씨(32)는 교생실습을 갈 때마다 초등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마주한다. 담임선생님이 “이번 교생선생님은 북한에서 오셨어요”라고 알려주면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가장 최근 실습을 나간 인천 남구 경원초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 씨가 스마트폰으로 구글 지도를 열어 함북 회령시 모습을 보여주며 “북한에도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가 있고 기차역도 있단다”라고 하자 학생들은 신기한 듯 생글거렸다.

장 씨는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북한에서도 선생님을 꿈꿨다. 첫 번째 탈북한 2008년에 그는 남포사범대에서 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이 문제였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으로 갔다가 붙잡혀 1년 반 동안 수용소에 감금됐다. 매일 ‘사상 조사’를 받았다. 맞다가 정신을 잃기도 했다. 2012년 4월 두 번째로 국경을 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웠다. 교사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직 후 새터민을 돕던 강정규 씨(67·여)와의 만남이 꺼져가던 희망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강 씨는 장 씨에게 “여기서도 교사가 될 수 있다”며 교대 입학을 권유했다. 돈이 부족한 장 씨에게 매달 용돈을 줬고 겨울엔 오리털 점퍼를 사주기도 했다. 장 씨는 2014년 경인교대에 입학했다.

장 씨는 스승의 날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12일 “한국 사람에게 초등학교 교사는 평범한 꿈일지 몰라도 나 같은 탈북민에게는 ‘거대한 꿈’”이라고 말했다. 새터민이 3만 명에 이르지만 북한을 탈출한 사람 중에 초등 교사는 지금까지 단 1명이었다. 올해 2명이 임용시험에 합격해 3명으로 늘었지만 문턱은 여전히 높다. 새터민 전형을 갖춘 곳도 경인교대 한 곳뿐이다.

어렵사리 입학한 뒤에도 가시밭길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온 사람이 남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 가장 두려웠다. 장 씨는 북한 말투를 고치려고 신경을 쓰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했다. 첫 지도안(案) 발표가 임박했을 때는 위궤양까지 앓았다.

장 씨는 이제 두려움을 극복하고 교사의 길에 ‘한 걸음’만 남겨뒀다. 장 씨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 교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들 하는데 북한이 싫어서 온 사람을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양쪽의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다 접해봐서 오히려 더 객관적이고 풍부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교생실습 때마다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 주는 학생들이다. 그는 “남북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교사가 돼 내년 스승의 날에는 꼭 아이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5일#스승의 날#경인교대#새터민#장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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