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식서 ‘적폐청산’ 우회 비판
“檢개혁도 수사효율성 담보해야”… 공수처 도입 등 신중론 내비쳐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에서 이임식을 마친 김수남 검찰총장이 배웅에 나선 검찰 간부들의 박수를 받으며 취재진을 향해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
김수남 검찰총장(58)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임사를 통해 새 정부 ‘적폐 청산’ 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을 했다. 김 총장은 “수사에서 소신은 존중돼야 하지만, 나만 정의롭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범죄자를 엄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차적 정의를 지키고 인권을 옹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의 발언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2)의 ‘검찰 개혁’ 방침을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조 수석이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를 천명하며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 책임자들이 벌을 받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한 발언에 대한 반박이라는 것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수사를 지휘했다. 김 총장은 조 수석이 검찰을 겨냥해 ‘국정 농단의 실체를 은폐했다’고 단정 지은 데 대해 불만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 총장은 이임사에서 “지금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며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가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도 검토돼야 한다”며 조 수석이 밝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 총장은 “우리 검찰도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그동안 잘못된 점,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김 총장은 류시화 시인의 시 ‘소금’을 인용한 뒤 “검찰이 사회의 소금이 되어주길 바란다”며 이임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김 총장의 퇴임식이 열린 대검 별관 300여 석 규모의 강당은 빈자리 없이 꽉 들어찼다. 검찰 간부들은 올 12월 1일까지인 임기를 못 채우고 검찰을 떠나는 김 총장을 착잡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김 총장이 퇴임식장에 들어설 때 참석자 전원이 1분 동안 기립해 박수를 쳤다. 퇴임식에 참석한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이 ‘공공의 적’으로 몰려 ‘적폐 청산’ 대상으로 거론되는 마당에 수장마저 떠나가 분위기가 냉랭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 후임 인선과 취임은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법무부 장관의 임명 제청,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당분간 김주현 대검 차장검사(56)의 총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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