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굽지 말란 것보단 낫죠… 장사 망친 미세먼지 날려주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상인들 ‘석탄발전소 중단’ 일말의 기대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194μg(매우 나쁨)까지 치솟은 7일 오전 남대문시장. 평소 일요일이면 손님이 몰리기 시작할 때다. 하지만 이날 시장 골목을 다니는 손님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한 손님이 액세서리 가게 앞에 진열된 가죽 열쇠고리를 집어 들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표면에 손가락 자국이 남는 걸 본 손님은 바로 물건을 내려놓고 근처 상가로 들어갔다.

수산물을 파는 남모 씨(61·여)는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생선 진열용 나무 좌판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남 씨는 “평소에는 생물이나 냉동 등 좌판용 생선을 따로 준비한다”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수족관에 넣을 활어만 갖고 와 판매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일상이 된 미세먼지의 ‘공습’이 전통시장 풍경마저 바꿔놓고 있다. 중장년 상인들은 마스크도 없이 장사에 나서지만 미세먼지가 덮치는 날이면 손님 발길은 뚝 끊긴다. 15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 시장 입구에서 과일 점포를 운영하는 장모 씨(63)에게 먼지떨이는 ‘필수’다. 장 씨는 “원래 시장에 흙먼지가 많아 수박 표면에 뽀얀 먼지가 많이 쌓인다”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하루에 수십 번씩 먼지를 털고 과일 표면을 수시로 닦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용문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김모 씨(62·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 씨는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예보를 들으면 판매할 반찬을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준비한다”며 “손님이 아예 없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본보 취재진이 서울의 전통시장 3곳 상인 30명에게 물어본 결과 26명이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손님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손님이 70% 이상 급감한다고 말한 사람도 2명이나 됐다.

전통시장 상인 중 마스크를 낀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먹거리를 파는 상인이 마스크를 쓸 경우 손님들이 꺼릴 것이라는 걱정 탓이다. 남대문시장 상인 박모 씨(65·여)는 “마스크를 쓰면 손님들과 대화하기도 불편해 목 안이 답답해도 마스크를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새 학기가 됐지만 야외활동을 거의 못 하고 있는 학교 현장의 사정도 비슷하다. 경기 의정부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모 군(12)도 2주 이상 학교 체육활동을 전혀 못 했다. 나 군은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을 때도 학교에서 운동을 못 하게 하는 것 같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서울의 10개 초등학교를 조사한 결과 올 3∼5월 한 학급의 체육수업을 야외수업으로 25% 이상 진행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미세먼지 수치가 정상이면 야외 체육수업을 50% 이상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일시적 ‘셧다운’(가동 중단)을 비롯한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자 상인이나 학생들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곽모 씨(76·여)는 “지난 정부의 ‘고등어구이 금지 정책’보다는 좋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가 생활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정책을 밝히는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의 오해를 샀던 것을 비꼰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이모 씨(27)는 “야외 운동을 시키고 싶어도 못 시키는 입장이었으니 정부 대책이 단기적으로라도 성공해서 아이들이 다시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미세먼지가 많이 배출되는 중국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남대문시장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구모 씨(63)는 “중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가 대부분인데 괜히 화력발전소를 닫았다가 ‘전기대란’만 발생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노점상 정근호 씨(54)는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극히 일부 아니냐”며 “차량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잡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위은지 wizi@donga.com·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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