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을 추종하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불법 체류자 A 씨가 수사당국에 밝힌 이야기다. A 씨는 언제 어디서든 초고속으로 접속이 가능한 와이파이(Wi-Fi) 인터넷 환경과 외국인 근로자에게 무관심한 한국인의 시선을 이유로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은밀하게 테러단체 선전물을 주고받고, 관련 모임을 가져도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A 씨는 “아직은 한국을 테러 장소로 활용하지 않고 주로 테러 방법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삼고 있으니 절대 쉽게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테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 발효돼 시행 1년이 됐다. 그러나 이 법에 따라 기소된 건수가 한 건도 없을 정도로 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 테러 학습 위한 ‘최적의 환경’
24일 동아일보 취재팀은 서울에서 차량으로 약 1시간 반 걸리는 중부권의 한 산업단지를 찾았다. 이곳은 우즈베키스탄 테러단체 ‘타우히드 왈지하드’를 추종하는 모임을 가진 불법 체류자와 같은 중앙아시아 국적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일하는 곳이다. 10개 공장 중 9군데서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해 공장 주변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가 고향에 있는 가족과 채팅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자주 연락하기 때문에 복지 차원에서 설치했다”고 전했다. 휴식 시간이 되자 이주노동자들은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바빴다.
최근 해외에서 불특정 다수 민간인을 상대로 한 ‘소프트타깃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국내 수사당국의 긴장도 한층 높아졌다. 중부 지역 A경찰서 외사 담당 경찰관은 “타우히드 왈지하드 단체가 국내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자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들은 전 세계 인터넷 정보를 서핑하며 관련 정보를 수집해 우리보다 테러 관련 소식을 더 많이 안다”고 전했다. 인근 지역 B경찰서 경찰관은 “외국인 근로자가 ‘이슬람국가(IS) 홍보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주변에 권유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확인 중”이라며 “IS에 가입할 수 있는 SNS 계정을 공유했다는 정황도 나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도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외국인 차별 행위도 충분히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한국인과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식사 시간에 한국인 직원은 가운데 테이블에서, 외국인 직원은 구석 테이블에서 식사할 정도다. 공장 관계자는 “우리 덕분에 수천만 원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면 큰 부자가 된다. 우리가 그들에게 고마운 존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해당 지역 외사 담당 경찰관은 “외국인 근로자는 주로 차별에 따른 모멸감 때문에 테러단체에 관심을 갖게 된다. IS 같은 힘이 있다면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처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무용지물’ 테러방지법
현장에서 대테러 업무에 종사하는 경찰과 대테러 수사당국 관계자들은 변화하는 국제 테러 흐름에 맞게 테러방지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정보·수사 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이 지정한 테러단체(81개)만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지하철 자폭 테러, 스웨덴 스톡홀름 트럭 돌진 테러 등 중앙아시아 출신 테러리스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국내에 추종자까지 나타났음에도 유엔 지정 테러단체가 아니면 수사나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유엔 지정 테러단체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을 겨냥한 단체 위주로 돼 있어 우리나라 실정과 맞지 않다”며 “다른 국가처럼 각 나라 사정에 맞게 테러단체를 지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테러방지법으로 기소된 사건의 수는 ‘0건’이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은 “공장 등에서 차별 대우를 받은 외국인은 한국인과 공권력에 대한 반감이 커진다”며 “일부 과격 성향의 테러단체 추종자의 선동이나 단체 가입 권유가 폭력적인 활동의 기폭제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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