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해로워보이는 담배’ 규제 옥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1일 03시 00분


청소년-여성 인기 ‘향기나는 담배’ 중독 심화 불러 판매금지 추진
용량 적으면 상대적 안심 유발… 니코틴-타르 함량 표기 삭제 검토

애연가 박모 씨(43)는 흡연으로 건강이 나빠질 것이란 걱정 때문에 몇 차례 금연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박 씨는 금연은 포기한 대신 담배 구매 시 담뱃갑 포장지에 적힌 니코틴을 비교해 양이 적은 제품을 고른다. 최근에는 향기가 나는 담배 제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박 씨처럼 ‘덜 해로운’ 담배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담배를 덜 해롭게 보이는 각종 요인을 점검해 향후 규제하기로 한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가향담배’ 규제를 비롯해 담배 포장 측면의 니코틴과 타르 함량 표기 삭제 등을 검토 중”이라고 30일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31일)을 맞아 하반기 금연정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복지부에 따르면 가향담배는 담배의 매캐한 향 대신 과일, 커피 등 좋은 향이 나는 제품이다. 레종, 에쎄, PEEL 등 여러 종의 국산이나 수입 제품이 있으며 특히 여성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다. 대표적 가향담배인 캡슐담배 판매량은 2012년 9800만 갑에서 2015년 약 5배인 4억8700만 갑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향담배가 담배 고유의 독한 향을 줄여 오히려 중독을 심화할 뿐 아니라 향기가 신경을 마비시켜 담배를 더 많이 피우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김지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선임연구원은 “가향담배 속 감미료가 연소되면서 발암물질을 발생시킬 수 있다”며 “미국, 유럽에서는 가향담배의 제조와 판매에 대한 규제가 있지만 국내에는 아무 규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복지부가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가향담배의 독성을 분석한 뒤 결과가 나오면 향 성분 제한, 판매 금지 등 규제를 하려는 방침을 세웠다.

이와 함께 담배 포장지 측면에 표기되는 ‘니코틴, 타르 함량’을 삭제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담뱃갑 포장지 측면에는 ‘타르 3.0mg 니코틴 0.30mg’ 식으로 용량 표기가 돼 있다. 이 수치를 보고 담배를 고르는 흡연자들이 적지 않다. 같은 담배라면 타르나 니코틴 함량이 적은 게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니코틴이나 타르가 적게 나오는 것은 필터에 뚫린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이성규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필터에 구멍이 많아 니코틴이 덜 빨린다고 생각하면 일부러 담배를 깊게 물고 피우는 경우가 많다”며 “담배 포장에 표기된 니코틴과 타르 용량이 적으면 안심하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표기된 니코틴, 타르의 양은 기계가 일률적으로 측정한 것일 뿐 개개인의 흡연 습관에 따라 용량보다 훨씬 많은 위해물질을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WHO도 담배제품 포장에 담배 성분 및 배출물에 대한 정보를 표기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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