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가두지 못하게 하려는 새 법이 30일 시행됐지만 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핵심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지침을 정부가 내놓아 논란이 예상된다. 강제 입원을 최종 결정할 ‘추가 진단 전문의’를 타 병원 소속이 아닌 같은 병원의 동료 의사로 대체할 수 있도록 완화한 것인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아닌 검찰이 발부하도록 한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짬짜미’ 방지 조항, 정부가 무력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제43조엔 보호의무자(가족)의 요청에 따른 강제입원 절차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환자를 2주 이상 입원시키려면 가족 2명이 요청해 전문의 1명이 동의하고 다른 정신병원 소속 전문의 1명이 입원 필요성을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문은 유산 다툼을 벌이는 가족과 의사가 공모해 ‘가짜 환자’를 정신병원에 부당하게 입원시키는 사례가 속출하자 신설됐다. 의사의 진단이 객관적으로 이뤄졌는지 검증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대다수가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보건복지부가 전국 정신병원에 배포한 ‘입·퇴원 매뉴얼’엔 “추가 진단을 실시할 다른 병원 소속 전문의가 부족한 경우 예외적으로 ‘같은 정신병원’의 전문의가 추가 진단을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개정법에 “출장 진단 전문의가 부족하면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정한다”는 예외조항이 포함됐는데, 복지부가 “다른 병원 전문의의 출장이 늦어져 꼭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퇴원하는 일을 막겠다”며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복지부는 3월 개정법의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할 당시 “전문의가 부족해 2주 내에 추가 진단을 받지 못하면 1회에 한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겠다”며 ‘기간 연장’ 방안을 발표했다. 정신건강의학계와 정신질환자 사회복귀 시설 관계자들도 이 방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법제처와 협의한 결과 기간 연장은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폐기하고 그 대신 의사의 소속에 대한 제한을 풀기로 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이 제정 21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개정된 이유가 환자 가족과 의사의 ‘짬짜미’ 진단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이 같은 취지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개정법에 따라 출장 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례는 한 해 12만9863건으로 예측되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을 맡아야 할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속 전문의 16명은 6월 말에야 채용될 예정이라 ‘땜질’ 진단이 습관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는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 조문을 예외조항에 따라 본래 취지와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 시행 첫날 ‘강제입원 관리 시스템’ 먹통
이날 진료 현장에서는 강제입원 대상 환자를 관리하기 위한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소동이 벌어졌다. 강제입원 대상 환자의 인적 사항과 증상 등을 기록하고 다른 병원에 전문의의 진단 출장을 신청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오전에 접속 권한을 등록하려는 의료진이 몰려 속도가 느려진 데다 오후에 업데이트를 위해 30분간 서버 작동이 중단되면서 병원 관계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개정법의 시행규칙이 시행 당일에야 공포된 것을 두고도 비판이 나왔다. 강제입원 대상과 절차 등 달라진 제도를 숙지할 여유도 없이 법이 시행됐다는 얘기다.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대적인 변화라서 초기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예상은 했지만 개정법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손봐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출장 진단은 1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추가 진단을 받아야 하는 기한은 입원 후 2주 이내이기 때문에 아직 진단 출장이 배정된 정신병원이 없었다.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강제로 입원된 환자로선 추가 진단 전문의를 4주간 기다리는 것보단 같은 병원 의사로부터 신속히 진단받는 게 인권 침해 소지가 적다고 판단했다”며 “일부러 다른 병원 전문의의 진단을 피하는 정신병원은 현장점검을 통해 엄중히 행정처분하겠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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