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뽑은 총장 영광… 세상 어디에도 없는 女大 만들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1일 03시 00분


‘131년 만에 첫 직선’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 31일 취임

《 김혜숙 이화여대 신임 총장(63·철학과)과의 인터뷰에 앞서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지 말고 정각에 맞춰서 와달라’는 말을 들었다. 칸트를 강의한 교수의 독특한 습관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총장님은 강의 중’이었다. 인터뷰 전 인문관에서 전공과목인 ‘칸트와 헤겔’ 강의를 하고 그는 약속 장소인 본관 총장실로 왔다. 정년은 2년 남았지만 31일 이화여대 16대 총장에 취임하는 그는 교수로서 이번에 마지막 학기를 맞게 됐다. 총장실로 출근한 첫날인 29일 이화여대 동문인 본보 강수진 부국장과의 인터뷰가 이뤄졌다. 김 총장은 이화여대 131년 역사의 첫 직선제 총장이다. 총장 선출에는 교수와 교직원, 재학생 그리고 졸업한 동문까지 참여했다. 》
 

청문회서 눈물 흘리던 교수 이화여대 역사상 첫 직선제 총장인 김혜숙 신임 총장은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화여대는 이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위쪽 사진). 김 신임 총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 농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 반대 시위 도중 학생들이 경찰에 해산당하는 영상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뉴스1
청문회서 눈물 흘리던 교수 이화여대 역사상 첫 직선제 총장인 김혜숙 신임 총장은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화여대는 이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위쪽 사진). 김 신임 총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 농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 반대 시위 도중 학생들이 경찰에 해산당하는 영상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뉴스1
―교수 직원 학생 동문 등 투표 주체 중 학생들의 압도적 몰표(95.4%)를 받았다. 소감은….

“‘학생들이 뽑은 총장’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졸업하고 나면 학교의 수혜를 입지 못하는 집단이다. 이해관계를 떠나 투표해 줬다는 의미다.”

―반면 교수 득표율(52.7%)은 가장 낮았는데….


“교수들은 아무래도 이해관계의 관점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교수사회의 갈등을 봉합하는 게 과제다.”

―총장 직선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인가.

“직선제를 치르면서 나온 말이 ‘이번은 직선’이었다. 앞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 번 직선의 ‘맛’을 봤으니 포기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지만(웃음). 직선제는 교수사회의 정치화나 패거리 문화, 연구 환경을 해치는 등의 부작용도 있으니 충분히 의견을 수렴해 더 연구해 보겠다.”

―이번 사태가 없었더라도 총장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나.

“2010년에 총장 출마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떠밀려 나갔는데 간선이라는 제도가 갖는 한계가 있다. 총장이 될 수 없는 구조였는데 그때는 기득권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몰랐다. 이번에 나간 건 지난해 시작된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이화여대를 어떻게 수습해 나갈 생각인가.

“31일 취임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할 예정이다. 교수사회 통합도 해야 하고, 평교수 중에서도 소외감을 느끼는 분이 많은데 이분들도 적극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하겠다. 교직원들도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권력이 집중된 상태에선 밀실행정이 이뤄지고 최경희 전 총장 같은 사태가 난다. 임기 중에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 구성원 모두 존중받는 문화, 그리고 대학 본연의 모습을 찾는 일에 집중하겠다.”

―대학 내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이대 비정규직은 어느 정도인가.

“이대는 40%가량이 비정규직이다. 결국은 재정 문제다. 눈에 보이는 비용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기득권인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면 충분히 그런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 나가겠다.”

최근 이대 로스쿨의 한 남자 교수가 ‘이대 나오고 결혼 안 하면 이대 총장 된다’는 막말로 물의를 빚었다. 이대의 기혼 총장 기록은 장상 총장 때 이미 깨졌다. 김 신임 총장 역시 아들을 둔 기혼 총장이다. 이번에 총장 후보로 나선 8명이 모두 여성이었다.

―이대는 폐쇄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일각에선 이대에서도 남자 총장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이화여대에 남자 총장도 물론 나올 수 있다. 다만 서울대나 고려대 연세대 등 남녀 공학들의 절반 정도가 여자 총장이 되는 시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아직까지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여성 공간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이화여대가 폐쇄적, 소극적이라지만 앞으로는 변할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달라.”

―한때 이대를 다녔던 정유라 씨(21·여)가 입국한다.

“이제는 자신의 삶에 주인이 돼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가지 덧붙여서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삶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지금 정 씨 본인에게 발생한 일들이 참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일에 굴하지 말고 이겨 나가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당시 시위하던 학생들은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데….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만 해도 경찰과 싸우는 게 당연했다. 요즘 학생들은 다들 곱게 자라지 않나. 자신을 보호해야 할 경찰과 울타리가 돼야 할 학교가 자신들에게 그런 일을 했다는 배신감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처음엔 학교가 치료비를 보조해 주려고 해도 신원이 드러나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신청도 안 하더라.”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 사태는 정부 지원을 따내려다 빚어졌다. 재원 확보 방안으로 ‘기부금’을 내세웠는데 충분할 것으로 보나.


“대학은 비즈니스맨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기부자들도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달라고만 해서는 주지 않는다. 이화여대가 뭐하는 학교인지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가치를 보여주는 일들을 우선으로 해서 기부자들이 기부하고 싶은 대학,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자대학을 만들겠다.”

김 총장은 취임사에서 도전을 강조한다. 그는 “이화의 힘은 남이 걷지 않는 길을 걷는 데서 나온다”면서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의 임기는 2021년 2월까지다.

정리=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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