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그림자가 길다. ‘당당한 경남시대’ 같은 어색한 구호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홍 전 지사와의 인연으로 감투를 꿰찬 측근 10여 명은 어떻게 해야 할까. 9일이면 그가 자유한국당 후보로 대선에 나서며 경남도지사에서 중도 사퇴한 지 두 달이다. ‘버티자’는 공감대가 있기라도 한 걸까. “알아서 떠나지 않겠느냐”던 예측은 빗나갔다.
한 지역 언론은 최근 나경범 서울본부장과 조진래 경남개발공사 사장을 홍 전 지사의 대표적인 ‘흔적’으로 꼽았다. 나 본부장은 “임기제 공무원이므로 2018년 1월까지 일하겠다”고 밝혔다. 17년간 홍 전 지사와 일한 그의 이력을 잘 아는 공무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어 생리를 알 만한 그의 처신이 생뚱맞을 뿐이다.
조 사장 역시 열심히 출근하고 있다. ‘비전문가의 정무적 임용’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변호사에다 국회의원,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이력에 흠결을 남기지 않으려면 용단이 필요하다. 정치적 재기(再起)를 위해서도 지혜로워야 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홍 전 지사가 3급 국장을 1급 별정직으로 발탁한 조규일 서부부지사 역시 ‘시선 집중’ 대상이다. 행정고시 출신 관료여서 전문성 시비는 없지만 홍 전 지사의 색채가 짙은 탓이다. 과거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가 중간에 사표를 내자 이덕영 정무부지사는 곧바로 떠났다. 반면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중도 사퇴했을 당시 허성무 정무부지사는 2개월을 더 머물렀다. 행정부지사와 신경전이 있었고 비판 여론도 따랐다.
자리를 붙들고 있는 기관장들은 전문성 시비가 있었다는 점이 닮았다. 경남로봇랜드 원장에 이어 경남항노화㈜ 대표를 맡은 백상원, 홍 전 지사의 고려대 동문으로 국정원 출신인 경남발전연구원장 유성옥, 경남도와 창원시에서 근무한 뒤 홍 전 지사의 선거를 돕고 ‘막차’를 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장 이성주, 전직 경남은행 간부로 연임에 성공한 경남무역 사장 박태훈. 또 람사르환경재단, 경남신용보증재단, 가온소프트, 경남도립 거창·남해대학의 대표나 간부 가운데 상당수도 홍 전 지사의 사람이다.
이들이 업무 공백을 걱정한다면 어색하다. 임기 중간에 보따리를 싼 주군(主君)은 보궐선거를 무산시켰다. 그런 뒤 “도정은 세팅이 돼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다. 그들이 물러나더라도 조직 운영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엇보다 류순현 행정부지사의 후임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비켜서야 한다. ‘박종훈 교육감 주민소환을 위한 서명부 위조’의 진상 규명, 진주의료원 재개원과 맞물린 공공의료 강화, 서부청사 운영의 효율성 제고, 도정연구관제 개혁은 새 정부 초기에 짚고 따져야 할 사안들이다. 빨리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잘못하다간 본인은 물론이고 주군까지 구차하게 만든다. 홍 전 지사가 늘 강조했던 표현은 바로 ‘당당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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